교편을 잡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가족 뒷바라지만 하다 10년을 보냈다. “내 삶을 살고 싶다”며 ‘독자노선’을 선언했다. 서른이 훌쩍 넘어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갔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욕망 따위는 없었다. 그저 공부하며 자기 삶을 되찾고 싶었다.
인생의 반전이 찾아왔다. 학교로 돌아왔으나 카메라를 버릴 수 없었다. 갈팡질팡하다가 복직 1년만에 사표를 던졌다. 장편영화 데뷔를 준비했다. 2010년 43세에 독립영화 ‘레인보우’를 내놓았다. 평단의 갈채를 받았다.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도 수상했다. 그렇다고 유명인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레인보우’의 관객 수는 고작 2,800명이었다.
굴하지 않았다.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다. 2012년 ‘순환선’으로 칸국제영화제 비공식부문인 비평가주간 단편부문에 초청돼 카날플뤼스상을 받았다. 2013년엔 ‘명왕성’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부문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대중들의 환대와는 거리가 먼 신수원 감독의 영화 인생은 화려하면서도 화려하지 않다.
지난 16일 칸국제영화제가 공식 부문 초청 영화들을 발표했다. 한국영화는 3년 연속 영화제의 꽃이라 할 장편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영화의 퇴보를 알리는 불길한 신호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은 쑥 컸으나 영화의 창의성은 뚝 떨어지고 있다는, 충무로가 하향평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영화계가 절감해야 할 지적이다.
희망적인 면도 있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마돈나’와 ‘무뢰한’이 동시에 초청됐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은 실험성이 강한 영화나 신진 감독의 작품을 주로 초대한다. 젊거나 무명인 감독들이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을 발판 삼아 세계 예술영화계로 도약하곤 한다. 한국영화계로선 미래 경쟁부문에 진출할 새 재목들을 갖게 된 셈이다. ‘마돈나’는 신수원 감독의 최신작이다. 어쩌면 몇 년 뒤 교사 출신 여성 감독의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과 수상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도 주목해야 한다. 2000년 ‘킬리만자로’로 데뷔한 오 감독은 15년 가량 충무로 바깥을 맴돌았다. 데뷔작이 은퇴작이 될뻔한 위기를 딛고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 ‘무뢰한’으로 칸을 찾는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다.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개성 있는 감독들의 영화작업을 돈이 안 된다며 외면할 때 무명의 감독들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으며 칸에 이르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충무로는 ‘무명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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