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詩心으로 토해낸 노래… 성심원 한센인들 시집 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詩心으로 토해낸 노래… 성심원 한센인들 시집 출간

입력
2015.04.22 17:22
0 0

“반백 년 한세월 / 성심원은 우리들의 무도장(舞蹈場) / 쪼그라진 귓불 / 문드러진 코납작이 / 비뚤다 흘러내린 입술! / 북 장단 없이도 / 건들건들! / 우린 함부로 막춤을 추었다.”(우리들의 무도장 중)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근육과 감각의 상실, 휘청대는 몸짓을 탓하고 우느니 춤추는 광대가 되길 바랐다. 힘없이 풀린 걸음을 차라리 막춤으로 삼고나니 목발소리도 추임새로 들리고, 세상은 한바탕 가면놀이 마당에 이른다.

경남 산청의 복지시설 성심원의 한센인 어르신들과 봉사자가 시집 ‘장단 없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를 출간했다. 가톨릭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성심원에는 146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30여명의 중증 장애인이 산다. 1959년 문을 연 이후, 숱한 환자들이 이곳을 찾아 몸과 마음의 위안을 얻다 생을 마감했다. 9명 저자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이상이다.

지난해 2월부터 성심원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가 만든 ‘시 치유 모임’에서 풀어낸 글을 모았다. 김성리 인제대 교수가 주말 내내 성심원에 머무르며 지도했고, 필기가 어려운 환자가 많아 저자들이 구술한 시어를 받아 적었다.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김성리 인제대 교수가 한센인 어르신들과 '시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심원 제공.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김성리 인제대 교수가 한센인 어르신들과 '시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심원 제공.

대표시 ‘우리들의 무도장’의 저자 노충진(77)씨는 “한센인들은 사회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성심원에서는 같은 처지끼리 모여 구애 받지 않고 생긴 모습 그대로 건들건들 막춤을 추어도 된다”며 “비록 훼손되었지만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성심원이야 말로 우리들의 무도장이라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시는 고통스러운 병세나 야속한 세상의 눈초리 대신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소소한 일상을 노래했다.

“오늘도 발바닥 혓바닥 신자는 / 주님의 성전에 들어선다 / 이마에 성수를 찍고 / 몸과 마음을 세탁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 자리에 앉아 / 또 달라고 보챈다 (…) 헛웃음이 나온다 / 이게 뭐냐고 / 회개한다면서.” (기도 중)

기도를 지은 박두리(66)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서러워질 때에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다”며 “가슴에 맺힌 것을 글로 표현하고 내가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시 모임'을 진행한 김성리 인제대 교수의 손에 한센인 어르신들이 노래한 시어가 담긴 메모가 차곡차곡 쌓였다. 성심원 제공.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시 모임'을 진행한 김성리 인제대 교수의 손에 한센인 어르신들이 노래한 시어가 담긴 메모가 차곡차곡 쌓였다. 성심원 제공.

저자 중 시 모임 5개월째인 지난해 7월 작고한 고 박태순씨는 성심원에서 차량운전 등을 해 온 봉사자다. 담뱃갑 은박지를 벗겨 시를 썼다 구겨 버리곤 했다는 박씨는 “나의 잘못이 이웃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시며 / 함께 하는 이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도록 / 언제나 깨어 있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시로 남겼다.

성심원 원장인 오상선 신부는 “저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용감하게 시로 토해내는 과정에서 많이 기뻐했다”며 “(한센병 환자) 마지막 세대 어르신들이 어렵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소중히 간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집 판매 수익금은 전액 성심원에 기부된다. 출판기념회는 24일 오후 2시 성심원 요양원 성당과 로비에서 열린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