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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학 총장? 공장장?

입력
2015.04.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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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사립대 총장의 언론 인터뷰가 구설에 올랐다.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했는데 재고만 쌓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되겠느냐. 취업률 같은 사회적 요구도 매우 중요하다.”대학을 공장에, 학생을 재고품에 비유한 셈이다. 대기업 회장이 아닌 대학 총장의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학생들의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공장에서 물품을 확인하는 사진에 ‘교수님이 출석을 체크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고, 공장에 가득 쌓인 제품 사진에는 ‘입학식’‘선후배 대면식이 열리고 있다’는 등의 제목을 달았다.

▦ 또 다른 사립대 총장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모든 학생이 돈의 가치와 위력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 대학 어디에도 돈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치는 대학이 없다. 그러니 자꾸 기업가와 부자를 적대시하는 풍조가 생기는 거다. 1학년 필수교양으로 기업가정신 과목을 개설할 계획이다.” 이 대학 총장에게 상아탑은 정의와 지성이 숨쉬는 공간이 아니다. 오로지 돈 잘 버는 학생을 배출하는 게 대학이 추구해야 할 목표다.

▦ ‘대학의 기업화’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 대학을 공장 하나 짓는 돈으로 산 재벌이 교수들에게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럽게 목을 쳐주마”고 막말을 퍼부어도 총장도 보직교수도 한마디 대거리를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언론이 뒤늦게 알고 꾸짖고서야 그 재벌은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정의가 스러지고 지성이 장식품이 된 요즘 대학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 서울지역 주요대 총장들은 지난달 서울총장포럼을 발족했다. 그곳에서 나온 얘기가 대학 기여입학제 허용과 등록금 자율화 요구다. 대학의 최고 어른으로서 오늘날 대학을 황폐화시킨 데 대한 일말의 자성은 없고 학부모에게 손만 벌리고 있다. 제자들의 취업이 걱정된다면 기업들을 향해 한 목소리로 취업문을 넓히라고 해야 할 텐데 되레 기업 눈치를 보고 있다. 고 김준엽 고려대 총장은 학생들에게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긴 역사를 볼 때 진리ㆍ정의ㆍ선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일깨웠다. 그런 존경과 신망을 받는 총장은 기대도 않는다. 다만 학문공동체로서 대학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역할은 지켜줬으면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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