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어린이 먹거리 안전 '꼴찌 앞자리'
경상남도가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대신 그 예산 전액인 643억원으로 21일부터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을 시행했습니다. 사업 이름 그대로 서민 자녀들에게만 교육비를 따로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경남도가 정한 ‘서민’의 기준은 최저생계비의 250%,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소득이 250만원 이하인 가구입니다. 경남도는 이 가정의 자녀에게 초등학생 연간 40만원, 중학생 50만원, 고등학생 60만원 한도 안에서 EBS 교재비 및 수강료, 보충교재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여민동락 교육복지카드’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가정 자녀의 학력 격차를 해결하고 서민계층에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펼치는 사업”이라는 게 경남도의 설명입니다. 경남도는 사업 시행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교육복지카드 지급이 ‘전국 최초’라고 강조했습니다.
동등한 교육 기회 제공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국 최초라고 하니 그 의미 또한 적지 않을 것이고요. 하지만 643억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갑작스레 이 사업에 사용하기 앞서, 경남도는 지역 아이들의 먹거리 영양과 안전은 전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통계인 ‘2014년 전국 어린이 식생활 안전지수’를 보면 경남도의 성적은 전국 17개 시도 중 뒤에서 두 번째, 소위 말하는 ‘꼴찌 앞자리’입니다. 어린이 식생활 안전지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어린이들의 먹거리 영양과 안전을 조사해 지난 달 발표했습니다. 이 지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단체 급식을 하는 곳의 영양 및 위생관리를 지원하는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 여부, 급식시설의 식품위생법 위반율, 집단급식소의 식중독 발생률, 지방자치단체의 영양 교육 노력 정도, 어린이들의 세끼 식사 섭취 수준 등 어린이 먹거리 영양과 안전에 대한 모든 항목을 평가해 점수화한 것입니다.
100점 만점인 어린이식생활 영양지수에서 경남도는 65.91점으로 꼴찌인 인천시(64.28점) 다음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전국 평균은 67.94점 입니다. 이 지수는 17개 시도 단위뿐 아니라 전국 228개 시군구 별로도 점수를 매겼습니다. 시군구는 점수에 따라 상(78.95~72.07점) 중(71.99~63.45점) 하(57.09점 이하)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그런데 전국 8개 도 중 경남도만 유일하게 단 하나의 시군구도 ‘상’ 등급이 없었습니다. 경남도는 왜 이렇게 ‘박한’ 점수를 받았을까요.
먼저 어린이집 등 단체 급식을 하는 곳의 영양 및 위생 관리를 지원하는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습니다. 경남도 내 집단급식소에서 밥을 먹는 어린이들은 총 10만1,799명으로 경기도(46만7,754명)에 이어 도 단위에서는 집단급식소 이용 어린이 수가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는 단 6곳뿐입니다. 센터 설치율이 27.78%로 전국 평균(71.50%)을 한참 밑돌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영양과 위생이 철저하게 관리되는 집단급식소를 이용하는 어린이는 2만3,563명에 불과해, 수혜율이 11.25%로 전국 평균(42.24%)의 4분의 1정도 밖에 안됐습니다.
식약처는 단체 급식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집에서는 얼마나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지도 조사했습니다. 세끼 식사는 꼬박 꼬박 챙겨 먹는지, 패스트푸드는 얼마나 먹는지 말입니다. 경남의 18개 시군 중 절반인 9개 시군의 아이들은 세끼식사를 챙겨먹는 정도가 전국 평균(92.04점)에도 못 미쳤고, 전체 시군의 3분의 2인 12개 시군은 건강에 좋지 않은 라면이나 탄산음료 등 패스트푸드를 전국 평균보다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거칠게 얘기하면, 경남도 어린이들은 밖에서 먹는 집단 급식도, 집에서 챙겨 먹는 음식도 굉장히 부실하다는 얘기입니다.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라 전국 어린이들의 식생활 영양과 안전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평가하기 위해 정부가 실시하는 ‘전국 어린이 식생활 안전지수’조사는 전국의 지자체가 어린이들 먹거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경남도가 수 많은 논란 속에 ‘전국 최초’로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 먹거리 영양과 안전 수준이 ‘전국에서 꼴찌 앞자리’라는 것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는 동등한 교육 기회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니까요.
전국 228개 시군구 중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서울 송파구였습니다. 송파구는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 입니다. 연구를 담당한 식약처 연구원에게 “지자체의 재정 여력과 어린이 식생활 영양지수가 상관관계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연구원은 “돈의 문제라기 보다 지자체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대답하더군요. 경남도가 무상급식 예산이었던 643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산을 사용하는 방법을 보니, 과연 돈보다는 의지의 문제라는 그의 지적에 다시 한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무상급식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경남도는 어린이 먹거리 영양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는 곳의 지자체장이 누구든,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은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으니까요.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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