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말을 자주 더듬는 편이었다. 혀에 문제가 있거나 심한 자폐증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본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을 거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앞에선 안 그랬던 걸로 안다. 학교 선생님이 질문하거나, 앞에 나서 뭔가 얘기해야 할 때면 증세가 심해졌다. 눈앞이 하얘졌고,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수치심부터 느꼈다. 그러고는, 그 즉시 자멸감에 휩싸여 고개 처박고 울기도 했다. 신기한 건, 눈물방울들이 말풍선처럼 보글보글 피어오를 때라야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이 깨끗이 정리되어 입가에 맴도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똑바로 전달될 수 없는 말들이었을 거다.
사춘기 때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땐 눈물 대신 주먹이었다. 말 몇 마디면 해결될 문제가 끝내 주먹다짐으로 와전되곤 했다. 후회막급의 상황으로 번질 때도 있었다. 그때의 주먹질은 가장 필요하고 적확한 말들이 중요한 순간 공란으로 비워져 있는 것에 대한 공포나 자괴의 표시였겠지. 말해져야 할 것들이 온전히 전달 안 되고 상대 귀를 열지 못할 때, 나는 요즘도 가끔 주먹을 바라본다. 상대를 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움켜진 뼈와 근육의 뭉치가 어쩌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틀어쥔 채 고집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주먹을 풀면 정말 내가 전하려던 말이 마법의 동전처럼 놓여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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