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304명은 죽었고 그 죽음은 억울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에 관한 물음은 일절 대답되지 않았다. 풀지 못한 의문은 의혹으로 커졌고, 물음은 울음으로 피멍울졌다. 밖으로 토해내야만 사그라질 울음은 안에서 곪아 깊어만 졌다. 말로만 책임지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국정 책임자들 탓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무정하고 냉혹하게 버려졌다. 권력은 잔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에 맞추어 좋은 옷 차려 입고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청와대는 비었고, 국무총리는 식물상태였고, 세월호 유족과 국민들은 광화문에 모였다. 경찰은 위헌 판결을 받은 차벽을 당당하게 겹겹이 치고 CCTV로 감시하며 참여자들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켰다. 물로 원한진 사람들에게 물 대포를 맹렬하게 쏘아댔다. 구조엔 무능하던 권력이 탄압에는 유능했다.
피해자가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는데 다독이지는 못할망정,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은 가만히 있으라고 겁주고 윽박지른다. 피해자를 조롱하고 이제 그만하라고 다그치며 침묵을 강요한다. 나치가 인질들을 처형할 때 혹시 그들이 반항과 자유의 말을 외칠까 봐 인질의 입을 붕대로 감고 석고를 칠하여 틀어막았다고, 노벨상 수상작가 알베르트 카뮈는 썼다.
내 나라에는 슬픔이 가득한데 남의 나라로 날아간 박 대통령은, 6ㆍ25 전쟁 때 파병해준 콜롬비아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고 스페인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남미의 위대한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좋은 말인데 좋게 들리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뜻과 무게는 달라진다. 말과 행동이 어긋날 때, 행동이 진심일 가능성이 크다.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아름다운 말은 제 자신을 더럽힌다.
출국 직전 팽목항에 간 박 대통령은, 경호원들 틈에서 빈 바다를 향해 세월호 인양을 발표했다. 유족은 없었다. 무시로 일관하다가 왜 지금에서야? 지난 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5월 18일에 국정책임자로서 그는 사과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연출 논란을 일으킨 그 눈물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진심이 아니었거나 국민들이 일제히 그 눈물의 의미를 오해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올 해는 보궐선거, 작년에는 지방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훌륭한 타이밍이었다. 내 편과 네 편을 확실히 갈라서 선거를 치르면 새누리당이 이길 확률이 아주 높았다. 하지만 친박 실세들이 대거 연루된 듯한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유족과 국민의 울음으로 가득한 그 바닷속 어딘가에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이 있다. 그들 모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울음으로 그 바다를 부여잡고 있는 우리들은 왜 기울어져 가는 배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를 알고 싶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돈을 줄 테니 더 이상 진실은 묻지 말라고 요구한다. 아주 모욕적이며, 파렴치한 행위이다. 이로써 마음에 없던 말은 끝났고, 속내를 행동으로 드러냈다. 돈밖에 모르는 이들은 진실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라틴어에서 망각의 반대말은 기억이 아니라, 진실임을 박 대통령께 알려드린다. 그러니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장은 ‘가슴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추구한다’로 말해도 무방하다.
가장 강력한 교황 후보였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은 “사람은 개선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에 대해서만 잘못을 뉘우”치며, “자기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에 묶여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아주 훌륭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한국의 권력자들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부터 찾기 바란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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