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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복궁 소주방

입력
2015.04.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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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水剌)는 임금의 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탕(湯)을 뜻하는 몽골어 ‘술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던 고려 때부터 쓰였다. 조선 왕궁에서 수라를 만드는 부엌을 가리키는 소주방(燒廚房)을 흔히 수라간이라고도 한 이유다. 학계에선 소주방은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고, 수라간은 만들어진 음식을 진설(법식에 따라 상을 차림)하는 곳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일반에서 딱히 구분하지는 않은 것 같다.

▦ 19세기말 북궐도형 등에 따르면 경복궁엔 전각 별로 여러 개의 소주방이 있었다. 그 중 핵심은 왕의 수라와 궁중 잔치음식을 담당하던 대전(大殿) 소주방이었다. 광화문-근정전-강녕전-교태전 등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남북 축선을 따라 걷다 보면 궁의 중심부인 강녕전이 나온다. 바로 이 오른쪽 너머가 대전 소주방 자리다. 전체적으로 ㅁ자를 형성하는 건물 17개 동으로, 임금의 수라를 장만하던 내소주방, 궁중의 잔치 및 고사 음식을 장만하던 외소주방, 임금의 별식인 다식, 죽, 전 등을 준비하던 생물방으로 쓰였다.

▦ 임금의 일상 수라는 이른 아침 미음 등으로 하는 자릿조반과 다과 등으로 구성된 밤참, 아침, 낮것, 저녁 등 보통 다섯 번이 차려졌다. 하지만 수라뿐 아니라, 궁중에서 쓰이는 대부분 음식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조리의 양은 엄청났다. 만기요람(萬機要覽)(1808년)에 따르면 하루에 내소주방에서 쓰는 멥쌀만도 14섬 2말 4되에 조기 2,646마리, 생치(꿩고기) 3,252마리, 소금 7섬 1말 2되 등이었으니 400명에 육박하는 소주방 담당 관원과 나인들이 하루 종일 숨가쁘게 돌아갔을 것이다.

▦ 경복궁 소주방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모두 헐렸다. 복원이 시작된 건 2011년 경복궁 2차 복원사업의 1단계 사업에 따라서다. 그 동안 드라마 대장금이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복원사업에 힘을 보탰다. 지난 1월까지 약 4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밥솥부터 유기반상기에 이르기까지 소주방에서 쓰인 모든 기명과 집기까지 되살렸다고 한다. 사실상 100년 만에 복원되는 경복궁 소주방이 5월2일부터 시작되는 궁중문화축전 기간에 공개된다니 기대가 크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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