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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아이 마음의 지도, 다빈치 코드를 해독하라

입력
2015.04.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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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에 그린 집·나무·사람

가족관계와 자아욕구 드러내

전문가가 추천하는 검사법

부정적 상징물·색상 있어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전체 그림의 조화·구조 살펴야

(그림1)
(그림1)

일곱 살 남자 아이가 그림을 그렸다. 아빠가 토라졌다. 가족을 그린 그림(그림 1) 속에서 아빠는 화면 구석의 돼지우리 앞에 외따로 서 있었다. 돼지우리가 웬 말인가. 키도 엄마보다 엄청 작게 왜곡했다. 동생은 아예 저 멀리 언덕으로 보내버렸다. 저와 엄마만 집 앞에 나란히 서서 햇볕을 쬐며 다정한 모습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게 다 주양육자의 특권을 이용해 아빠를 우습게 여기도록 만든 엄마의 잘못된 양육 방식 때문이라고 아빠는 생각했다. 집밖에 모르는 팔불출이라고 놀려도 굴하지 않고 가정에 헌신해 왔건만. 우리 가정은 과연 행복한 걸까, 아빠는 회의와 불안에 빠졌다.

6세 여자아이의 그림이다. 나와 친구들을 우주의 행성으로 표현했다. '나'를 닮은 행성이 중심(화살표 표시된 머리 묶은 아이)에 있고, 주변에 친구들을 배치했다. 바탕색은 어둡지만 전반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이며, 친구들과 상호작용이 잘 되고 있다. 아이의 대인관계가 원활함을 유추할 수 있다.
6세 여자아이의 그림이다. 나와 친구들을 우주의 행성으로 표현했다. '나'를 닮은 행성이 중심(화살표 표시된 머리 묶은 아이)에 있고, 주변에 친구들을 배치했다. 바탕색은 어둡지만 전반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이며, 친구들과 상호작용이 잘 되고 있다. 아이의 대인관계가 원활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림은 아이 마음의 지도

아이들은 노상 그림을 그린다. 종이에도 그리고, 벽에도 그리고, 소파에도 그린다. 언어표현이 미숙한 아이들에게는 그림이야말로 제1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한낱 낙서로 여겨 치우기 바쁜 아이들의 그림은 아이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마음의 지도다. 이 지도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하면 부모는 아이와 진정으로 소통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그림언어 번역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김선현(47) 차의과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장을 만났다. “그림은 아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진기”라고 말하는 그는 미술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세계미술치료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등 국내외 여러 트라우마 현장에서 미술치료를 맡아왔다. 올 3월 발간돼 베스트셀러 순위 5위까지 오른 ‘그림의 힘’에 이어 최근 그림으로 아이 심리 읽는 법을 소개한 ‘엄마는 아이의 마음 주치의’(중앙북스)를 펴냈다.

미술치료라고 하면 심각한 사건ㆍ사고를 겪었거나 심리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는 “아이의 모든 그림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말로는 드러내지 못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는 속마음이 그림에는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 표현된 아이의 욕구와 신호를 제때 감지하지 못하면, 손 쓰기에 너무 늦어버리는 수도 있다. “병원에 있다 보니 별별 아이들을 다 만나죠. 문제가 있어 찾아오는 아이들의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고요. 아이의 성공이 부모의 성적표처럼 인식되고, 엄마들은 온갖 신경을 다 쓰며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말이죠.” 그는 “건강한 마음이야말로 아이가 갖춰야 할 제1의 스펙”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언제 어디서 인용되어도 옳다.

7세 여자아이. 유치원 끝난 후 집에 돌아가기 싫은 마음을 그렸다. 집의 지붕에는 뿔이 난 창문과 굴뚝이 있으며, 문이 없고 창문만 가득하다. 가정 내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가족관계가 안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족 내 낮은 유대감과 상호작용은 몸에 난 가시로 표현됐다. (김선현의 '엄마는 아이의 마음주치의' 중)
7세 여자아이. 유치원 끝난 후 집에 돌아가기 싫은 마음을 그렸다. 집의 지붕에는 뿔이 난 창문과 굴뚝이 있으며, 문이 없고 창문만 가득하다. 가정 내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가족관계가 안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족 내 낮은 유대감과 상호작용은 몸에 난 가시로 표현됐다. (김선현의 '엄마는 아이의 마음주치의' 중)

그림 속 ‘집, 나무, 사람’을 살펴라

김선현 교수가 추천하는 가정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그림검사법이 있다. 심리학자 로버트 번즈가 개발한 KHTP 검사다. 여기서 HTP는 각각 House, Tree, Person의 약자로, 집, 나무, 사람을 한 장의 종이에 모두 그리게 해 세 영역의 상호관계(Kineticㆍ운동성 또는 활동성)를 파악하는 그림 검사법이다. 집 그림에는 아이의 물리적인 생활환경과 대인관계에 대한 태도가 나타나고, 나무 그림에는 무의식적인 심리적ㆍ신체적 자아 개념이 드러나며, 사람 그림에서는 아이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집의 요소 중 굴뚝은 친밀한 인간관계에서의 따뜻함을, 굴뚝에서 나오는 강하고 진한 연기는 가정 내의 갈등과 정서의 혼란을 나타낸다. 문은 환경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과 대인관계에 대한 태도를, 창문은 대인관계에서 겪는 경험과 느낌을 나타낸다. 지붕은 가족에게 느끼는 안정감을, 벽은 외부로부터의 보호 및 자아통제력과 연관이 깊다. 그러므로 크게 그린 문은 적극적인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타인에게 인상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며, 창문이 없는 집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폐쇄적이거나 외부에 대해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경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붕이 없거나 선 하나로만 표현됐다면 성격이 위축되었음을, 벽돌집처럼 튼튼한 벽은 강한 자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나무의 요소 중 뿌리는 아이가 가족에게서 얻는 근본적인 안정감을, 줄기는 성장과 발달이 이뤄지는 현재 상황에서의 아이의 에너지, 생명력 등을 반영한다. 가지는 환경에 대한 만족 여부와 대처 능력 등을 보여주며, 열매는 강한 의존 욕구, 꽃은 외면적 체면, 잎은 장식이나 활력을 드러낸다.

사람을 그릴 때는 무엇을 과장하고 생략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머리는 7세 이하의 아이들이 크게 그리는 경향이 있지만, 지나치게 클 경우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높고 원대한 열망이 있음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작다면 열등감이나 무기력함이 있을 수 있다. 너무 큰 눈은 남의 시선에 민감함을 보여주며, 눈동자 없이 텅 빈 눈은 외부 세계에 관심이 없고 마음이 공허한 상태일 수 있다. 팔은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므로 크고 긴 팔은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나 공격성을, 짧고 작은 팔은 수동적이고 억제된 성격을 드러낸다. 발과 다리는 자율성과 안정감을 나타내 생략된 다리는 자신감 위축, 긴 다리는 독립에 대한 욕구나 과잉행동을, 커다란 신발은 안전에 대한 요구를 상징한다.

가족 그림에서는 구성원이 그려진 순서와 크기, 거리와 위치, 생략 등을 통해 가족간 상호작용을 엿볼 수 있다. 그려진 순서는 가족 내에서의 서열이나 지배력을 반영하며, 크기와 거리는 각각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과 친밀도를 반영한다.

색깔도 아이 마음의 거울이라 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아이가 색을 선택하고 그리는 데는 아이의 마음 상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가지 색채를 편중되게 사용할 경우,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일 수도 있으므로 세심하게 아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색은 대부분 양면적 상징 의미를 가지므로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 빨간색은 밝고 건강한 내면을 의미하지만 고집이 센 아이의 그림에서 자주 나타나는 색이며, 파랑은 맑고 푸른 긍정적 의미와 그리움과 우울함의 부정적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9세 남자아이의 그림. 부모의 이혼 후 운동 틱과 음성 틱을 동반한 뚜렛장애 진단을 받았다. 졸라맨과 공룡, 로봇들이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데, 이는 가정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불안 심리로 나타난 것이다. 가족 내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며, 미술치료에는 점토, 물풀, 물감 등 부드러운 매개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9세 남자아이의 그림. 부모의 이혼 후 운동 틱과 음성 틱을 동반한 뚜렛장애 진단을 받았다. 졸라맨과 공룡, 로봇들이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데, 이는 가정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불안 심리로 나타난 것이다. 가족 내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며, 미술치료에는 점토, 물풀, 물감 등 부드러운 매개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스케치북의 흐름을 보라

하지만 김 교수는 “그림 속 상징만으로 아이의 마음을 획일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그림 속의 대상뿐 아니라 배치와 구도, 색과 선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읽어야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독해할 수 있고, 아이의 그림이라는 것은 늘 변화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을 그려보면 문제가 없는 아이는 아무도 없어요. 가지가 너무 뾰족하네, 엄마를 안 그렸네… 모든 걸 심리문제로 환원하면 안 됩니다. 그림 한 장 그려놓고 이게 문제네, 저게 문제네, 상처를 헤집어서도 안 됩니다. 아이가 뾰족한 가지를 그린 그림을 흥미롭게 본 후 사실적으로 모사한 것일 수도 있고, 기능적으로 그림 실력이 모자라 인물화가 제대로 표현 안 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심리치료센터가 아니라 미술학원으로 가야 합니다.”

세계미술치료협회장인 김선현 차의과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장은 "아이가 그린 그림 속에는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며 "미술이라는 즐거운 놀이를 통해 마음을 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스케치북부터 손에 쥐어주라"고 조언했다.
세계미술치료협회장인 김선현 차의과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장은 "아이가 그린 그림 속에는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며 "미술이라는 즐거운 놀이를 통해 마음을 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스케치북부터 손에 쥐어주라"고 조언했다.

부정적 상징물이나 색상이 등장했다고 해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미술활동을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를 올바르게 발산하고 해소하는 경험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향상시켜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요. 엄마에 대한 미움을 빨갛고 까만 괴물로 형상화해 스케치북에 잔뜩 칠해놓은 게 욕하고 부수는 행위보다 훨씬 건강한 해소법이니까요.”

그림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잘 그린 그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소재나 색상에 대해 꼬투리를 잡아서도 안 된다. 그랬다간 아이의 솔직한 마음이 잘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가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 검사를 진행할 때에는 위와 같은 점에 신경 쓰며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 조화, 구조, 이상한 곳은 없는가에 주목하여 사람을 어떤 모양으로 그렸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이상을 종합해 그림 1의 아빠에게 들려주는 김 교수의 조언. “아이가 엄마를 유난히, 굉장히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엄마 머리 위에 그려놓은 ‘My book’이라는 제목의 책은 아이가 엄마의 지성에 경이감을 품고 있고, 엄마를 롤모델로 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엄마의 헤어스타일을 자신과 같은 남자로, 엄마의 치마를 씩씩한 성격을 드러내는 파란색으로 칠했죠.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동생과 아빠를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아이는 가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행복합니다. 온화하고 다채로운 색상, 큰 창문과 튼튼한 집, 꽃과 나무, 의인화된 태양이 이 아이의 행복을, 정서적 안정을 보여주죠. 아빠가 축소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입니다. 그럴 시기니까요. 아빠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아빠의 남성성을 동경하게 될 사춘기 때, 반전을 도모해 보세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사진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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