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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리스트

입력
2015.04.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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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를 명련(名聯)이라고도 하는데, 과거 공부하던 조선 거자(擧子)들이 가장 오르고 싶은 명련은 황갑(黃甲)이었다. 황갑은 갑과(甲科), 즉 문과(文科) 급제자의 명단을 노란 종이에 썼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벼슬길에 처음 나서는 것을 ‘황지(黃紙)에 이름을 올렸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과급제자 명단을 또 금방(金榜)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귀한 명단이라는 뜻이다.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가 되는 소과(小科) 급제자 명단을 연방(蓮榜)이라고 했다. 유학 국가에서 연꽃 연(蓮)자를 쓴 것이 이채롭다.

문과급제자 명단을 용방(龍榜), 무과급제자 명단을 호방(虎榜)이라고도 한 것도 유래가 있었다. ‘신당서(新唐書)’ ‘구양첨(歐陽詹) 열전’ 등에 따르면 당(唐) 덕종(德宗) 때 육지(陸贄)가 시관이 되어서 구양첨과 한유(韓愈), 이관(李觀), 이강(李絳), 최군(崔?) 등 쟁쟁한 인재들을 많이 뽑자 세상에서 이를 용호방(龍虎榜)이라고 불렀다. 조선에서도 이 고사를 채용해 문과를 용방, 무과를 호방이라고 했다. 그런데 과거 같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도교(道敎) 계통의 은자(隱者)들이다. 이들은 선계(仙界)에서 노니는 신선이 되는 것이 소원인데 이런 신선의 명단을 금록(金?) 또는 옥적(玉籍)이라고 한다.

리스트 중에는 억울하게 화(禍)를 입은 사람들의 리스트도 있었다. 사화(士禍)를 당한 선비들의 리스트가 그런 경우이다. 명종 즉위년(1545) 대비 문정왕후의 동생인 소윤(小尹) 영수 윤원형이 장경왕후의 오빠였던 대윤(大尹) 윤임(尹任)과 여러 선비들을 제거한 것이 을사사화다. 윤원형 집권 시에는 이때 화를 입은 성균관 유생들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였다.

조선 중기 문인 최립(崔?ㆍ1539~1612)이 쓴 ‘의인(宜人) 이씨(李氏) 묘갈명’에 이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의인 이씨의 남편인 심건(沈鍵)이 반궁(泮宮), 즉 성균관에 가보니 벽에 쓴 명단 중에서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유생들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심건은 그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어떤 아첨꾼이 이토록 야박하고 못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라면서 붓을 가져다 삭제된 명단을 써서 붙이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아연실색했다는 이야기다. 심건의 아들이 선조와 광해군 때 정승을 역임하고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던 심희수(沈喜壽)였다. 이후에도 피화자(被禍者) 명단은 선비들 자신은 박해를 받았을지라도 자손대대로 영예롭게 생각하는 명단이었다.

정약용이 쓴 자신의 묘지명인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도 리스트가 등장한다. 정조가 재위 24년(1800) 6월 독살설 끝에 사망하자 정권은 정조와 이가환ㆍ정약용 등 남인들의 정적이었던 노론 벽파의 손에 돌아갔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에서 정조 승하 소식을 듣고 급거 귀경해서 “홍화문(弘化門) 앞에 이르러 조득영(趙得永)을 만나 서로 가슴을 치며 목 놓아 통곡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정약용은 이때 “악당들이 기뻐 날뛰면서 날마다 유언비어와 위태로운 말을 지어내서 듣는 자들을 의혹시켰다”고 전하면서 “이가환(李家煥) 등이 장차 난을 일으켜 4흉(凶)ㆍ8적(賊)을 제거하려 한다”는 말까지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4흉ㆍ8적은 대부분 노론 재상들인데, 정조 사망으로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게 된 남인들이 노론 재상들을 제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정조 사망을 계기로 남인들의 씨를 말리려는 노론의 정치공작 명단이었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에 “나는 화란의 낌새가 날로 급박해짐을 헤아리고 곧바로 처자를 (고향)마재로 돌려보내고 혼자 서울에 머무르며 세상 변해감을 관찰하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약용이 여유당(與猶堂)이란 당호(堂號)를 지은 것이 이 무렵이었다. 여유당은 ‘노자(老子)’의 “망설이면서(與)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猶)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정조 없는 세상 즉 노론 벽파가 다시 득세한 세상을 그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말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윗형인 정약종은 노론 벽파에 의해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사형당하고, 맏형 정약전과 정약용은 한때 천주교도였다는 이유로 기나긴 유배 길을 떠나야 했다.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과제를 던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권력의 결탁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상부 구조를 어떻게 해체하고 돈과 권력이 긴장관계인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일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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