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후보자 비방죄’는 권위주의적인 명예훼손 법제와 규제 위주의 억압적인 선거법제가 결합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어디에도 없는 ‘후보자 비방죄’라는 죄목을 유지하고 있다. 또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할 때 검찰의 입증 책임을 크게 묻지 않고 거꾸로 피고인에게 입증 수준에 가까운 소명자료를 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 등 여러 국제기구들이 명예훼손 비(非)형사범죄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과 대비된다. 공직선거 후보자나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인 경우, 매우 악의적인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아닌 한 민사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이 선진국 추세다.
선거는 대의제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최고도로 보장돼야 하는 공간이다. 공직선거 후보자 명예훼손에 대해 민사 책임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거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검찰권의 남용과 정치적 악용의 위험성을 키우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선거운동 기간에 상대 후보의 의혹을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 때문에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호주에서는 2007년 선거법에서 ‘허위사실 공표죄’를 삭제했다. 그 배경이 된 로버츠 대 바스 사건을 소개하고 싶다.
지역 유권자인 로버츠는 1997년 남호주 주의회 의원인 바스의 재선을 막기 위해 유인물을 제작 배포했다. 바스가 의원 직위를 이용해 공금을 유용하거나 마일리지 무료 여행으로 휴양지를 다녔다는 내용의 엽서와 팸플릿을 집집마다 보낸 데 이어 투표 당일에는 비슷한 내용을 담은 카드를 여러 투표소에서 배포했다. 바스 의원은 로버츠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주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해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연방 최고법원에서는 로버츠가 편견과 부주의로 인해 비합리적이고 그릇된 내용을 공표한 것은 비난 받을 소지가 있지만 “그가 유인물에 담은 사실들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면서 공표했다고 하여 이를 악의적인 공표로 해석하여 책임을 묻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판결문 중 주목할 것은 “후보자의 정치적인 평판에 손상을 가하고 그를 낙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출판ㆍ홍보를 하는 것은 민주적인 선거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이웃 대만에서는 지난 10년간 각급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 받은 사람 중 93.8%가 금품 향응 등과 관련이 있었고,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것은 3.6%에 불과했다. 한국은 지난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선거사범으로 입건된 총인원 중 금품 향응 등 관련자는 32.5%였는데, 허위사실공표 관련자는 무려 25.7%나 되었다. 대만의 선거법에도 허위사실 공표죄가 있긴 하지만 허위임을 알면서 고의로 공표하는 등 악의성이 높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검찰과 법원은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남용과 규제 위주의 억압적인 선거법의 존재가, 한국이 언론자유 국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2011년 ‘대한민국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 실태에 대한 심층 보고서’에서 명예훼손죄의 남용과 선거 관련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제한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자들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우리 국민 전체와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유종성 호주국립대 정치사회변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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