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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1980년대

입력
2015.04.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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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만 듣던 서녘의 피바람 소식을 8~9년쯤 지난 시점에야 제대로 접할 수 있었다. 어렸었으며, 세계와 나 사이가 그리 가깝게 여겨지지 않았다. TV 속과 TV 바깥이 어떤 구체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서울과 부산을 수 차례 오가며 친구들이 바뀌었고, 한 두 해 만에 재회한 친구들은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아닌 것만 같았다. 대통령 뒷 머리카락 개수와 수하들의 면면에 대한 의도치 않게 정확한 판별력이 생겼고, 학교 근처에서 마주친 대학생들의 머리는 대개 장발이었으며, 어딘가 범죄의 냄새가 났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에서도 최루탄 냄새를 맡을 때가 있었다. 데모대와 전경들의 방패를 희화해서 그린 만화가 지망생 친구가 있었지만, 한참 후에 만화가가 된 친구는 그 친구가 아닌, 얌전하고 공부 잘 하던 아이였다. 종로에서 명동까지 얼결에 따라갔던 어른들 행렬이 역사를 바꾸는 날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언감생심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고,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정견을 묻던 국민윤리 선생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학교로 옮겼다. 그래도 관심사는 세계에서 기타를 가장 빠르게 치는 사람이나 또래 여자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따위였다. 울음이 줄어들었고, 키가 아버지보다 커졌으며, 헤어무스라는 걸 바르곤 거울 앞에 자주 섰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참 애매한 얼굴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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