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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은 자유롭다? 보수적 기업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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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은 자유롭다? 보수적 기업도 많다

입력
2015.04.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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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근무환경·복지 제도 등

취업준비생에게 선망 대상 불구

'한국 현지화 전략' 기업들에선

잦은 야근과 성차별 등 갈등 잦아

영업부서는 해외 출장도 별따기

전문가들 "막연한 환상은 버려야"

2년 전 한 외국계 유명 회계법인에서 인턴을 했던 A(26)씨는 회사에서 상사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재미동포 출신 변호사인 B씨에게서 사사건건 전화응대 문제로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B씨는 통화 도중 ‘압존법(대화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 나이나 지위가 높지만 상대방보다 낮을 경우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을 틀리면 가차없이 전화를 끊었다. A씨는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존댓말에는 유난히 신경을 써 다른 인턴들도 벌벌 떨었다”며 “외국계 기업은 서로에게 ‘님’을 붙여 부를 만큼 수평적 문화라 들었는데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흔히 외국계 기업은 취업준비생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국내 대기업과 맞먹는 높은 급여 수준, 글로벌 기준에 걸맞은 복리후생, 자유로운 근무환경 등 직장 새내기의 구미에 맞는 조건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 취업포탈 ‘사람인’이 1월 대학생 및 구직자 1,424명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응답자들은 ‘복지 제도(38.6%)’ ‘서구식 기업 문화(22.4%)’ 등을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았다. 건국대 경영학과 3학년 김연지(21)씨는 “위계질서가 덜한 것도 장점이지만 연차에 상관없이 능력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훨씬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외국계 기업이 구글, 애플처럼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간판을 단 기업들도 국내에 정착하는 순간, ‘한국 기업문화’와 버무려지면서 원래의 장점이 퇴색하기 마련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에 인수ㆍ합병된 국내 회사의 경우 서구식 소통 방식과 기존 상명하복식 문화가 충돌해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10여년 전 외국계 회사에 인수된 유명 비철금속업체에 다니는 C씨는 “회식 자리에서 자기 팀 전무에게 나이 어린 남미 출신 옆 팀 팀장이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부하 직원이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이냐’ ‘매너가 없다’고 항의해 분위기가 싸해진 적이 있다”고 했다. C씨는 “외국인 팀장이 있는 팀은 사원이 팀장에게 곧바로 보고하는데 한국인 팀장이 있는 경우에는 과장이나 차장을 거쳐 더 복잡하다”며 “통일된 기준이 없다 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유명 부동산 컨설팅업체는 고객 전화를 전담 처리하는 여직원 한 명을 점심시간에 대기시켜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김민정(가명)씨는 “최근 여직원들이 집단 항의해 남자 직원도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지만 탕비실 정리 등 잡무는 여전히 여직원의 몫”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에 입사한다고 영어 능통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해외 본사와 소통하는 부서 외에는 막상 외국어를 사용할 일이 많지 않다. 유명 외국계 식품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최지애(29ㆍ가명)씨는 “마케팅, 전략 부문 등은 지역 본부나 본사와 교류가 빈번하지만 영업 부서는 국내 기업과 똑같다”며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직원이 태반이고 20년 동안 해외출장 한 번 못 가본 상사도 있다”고 했다.

기대와 다른 현실은 어렵게 얻은 직장을 쉽게 포기하게 한다. 수년 째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뽑힌 외국계 시설관리 업체에서는 얼마 전 글로벌 인재전형으로 입사한 신입사원 9명 중 7명이 무더기로 퇴사했다. 이 회사를 관두고 새 직장을 찾고 있는 장혜민(26ㆍ가명)씨는 “대기업과 다를 바 없는 잦은 야근과 회식은 기본이고 경영 관련 부서에서 비서 업무로 갑자기 이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의 D씨는 최근 성희롱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회식 자리에서 직장 상사는 “대표님 외로우신데 손 안 잡아드리고 뭐하느냐”며 D씨에게 눈치를 줬다. D씨는 새벽 3시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대표 옆에 앉아 술시중을 하며 온갖 음담패설을 들어야 했고, 그 날의 충격으로 회사를 떠났다.

전문가들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헤드헌팅 업체 커리어앤스카우트의 서선영 부장은 “이직 시장에서도 대기업 문화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외국계 기업이 인기지만 생각보다 보수적인 분위기에 실망하는 경우가 잦다”며 “해당 회사의 배경과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라고 말했다. 전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계 회사가 대체로 국내보다 근무 여건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지화 전략을 쓸 경우 각 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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