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문성식, 드로잉 에세이집 내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화는 아니다. 연필과 사인펜, 먹 등을 활용해 그린 흑백 그림이다. 숲 속 풍경을 그렸지만, 대자연의 풍광보다는 그 안에서 사냥을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 연기를 날리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땅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제멋대로 뻗은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도 놓치지 않은 세심한 필체가 인상적이다. 화가 문성식(35)의 드로잉(하나의 필기구로 간단하게 스케치한 그림)은 산수화라기보다는 풍속화다.
문성식이 지금까지 그린 드로잉과 에세이를 엮은 책 ‘굴과 아이’(스윙밴드)를 내놨다. 2009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짧은 글과 일기를 모아 자신의 그림과 연결했다. 그가 나고 자란 경북 김천시 시골 마을의 일상과 서울에서 포착한 사람들의 모습이 글과 그림에 두루 담겼다.
문성식은 2005년 25세의 나이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대작가가 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에는 채색회화인 ‘직사각형 정원’연작을 선보였다. 이후로는 주로 드로잉 작품을 그대로 전시해 왔다. 대부분의 미술 작가가 드로잉을 작품 구상이나 습작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성식의 시도는 이채롭다. 그는 드로잉을 작품으로 내놓은 이유를 “내 생각을 좀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로잉을 편한 대로 그려내는 스케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소재를 고르는 것 자체부터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림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기억을 토대로 세부 사항을 꺼내 그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풍경은 그가 느낀 대로 왜곡 표현된다.
특히 온통 검은색으로 색칠된 공간이 드러나는 그림이 대표적인 예다 ‘굴과 아이’의 동굴, ‘형과 나’의 연못,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의 밤하늘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는 김천에서 15세까지 머물던 그가 어린 시절 자연으로부터 느꼈던 위압감을 반영한 것이다. “검은색을 좋아합니다. 검게 칠한 공간 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책에는 작가의 할머니가 자투리 땅에 경작한 채소와 곡물을 그린 ‘할머니의 나라’나 할아버지가 급히 필요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정장 상의만 걸치고 촬영하는 모습을 그린 ‘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 등도 수록됐다. 시골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들이다. “한국화가 중에서는 정선의 대범함과 김홍도의 기술을 닮고 싶어요. 현대판 풍속화로 봐 주시면 감사하죠.”
문성식은 내년 6월 두산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채색회화로 돌아가지만 그간 드로잉에서 보여준 세심한 묘사를 살린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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