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기적이 일어난 거죠.”
넥센 송신영(38)이 웃음지었다. 어느덧 팀의 최고참이 된 그가 데뷔 17년 만에 새로운 야구 인생의 막을 올렸다.
1999년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한 그는 2008년 5월17일 사직 롯데전에서 선발 등판한 후 불펜투수로만 나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했다. 늘 좋았던 건 아니다. 지난해 송신영은 41경기에 등판해 2승1패 2홀드 평균자책점 6.59에 그치며 고전했고, 한현희(22)와 조상우(21) 등 어린 후배들의 성장에 그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난 겨울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그에게 ‘선발 전환’을 권했다. 불혹을 앞둔 ‘불펜투수’에게 내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스스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겨우내 그는 ‘선발투수’가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굵은 땀을 흘렸다.
지난 19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마운드에는 2528일 만에 ‘선발투수’ 송신영이 섰다. 그는 6⅔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현대 시절인 2006년 7월15일 수원 LG전 이후 3200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선발 송신영’의 가치가 빛난 1승이자, 선발진이 약해 고전 중인 팀에 희망을 비추는 승리였다. 송신영은 “불펜투수로 야구 인생이 끝날 줄 알았다. 감독님께서 기회를 안 주셨다면 이런 날도 안 왔을 거다”고 말했다.
-3200일 만의 선발승을 거뒀다.
“운이 좋았다. 타자들이 초반에 점수를 많이 뽑아줘 상대 타자들의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다. 사실 어떻게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긴장도 많이 됐다. 잘 던진 게 맞나 싶기도 하다. 이제 올 시즌 한 경기를 치렀는데 다음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불펜이 편하긴 하다.(웃음)”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힘들어 죽겠다. 공을 던지면서 몸이 쑤신다. 원래 던진 다음날 아파야 하는데 2, 3이닝 정도 되면 벌써 아프다. 그러니까 (오늘 결과가) 더 기적이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솔직히 감독님께서 선발로 준비하라고 하셨을 때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될까,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있었고, 부담도 됐다. 주변에서도 모두 걱정을 했다.”
-지난해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사실 작년에는 은퇴까지도 생각할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마운드에 서는 게 두려웠다. 스피드는 안 떨어지고 유지를 하는데도 계속 맞아나가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은퇴를 할 때가 됐나’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올 시즌 첫 등판이자 7년 만의 선발등판에서 쾌투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수비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다는 거다. 우리 팀 선수들의 응원도 컸다. 필승조인 (손)승락이와 (김)영민이, (조)상우가 더그아웃에서 한국시리즈처럼 공 하나 하나 던질 때마다 응원을 하더라. 마운드까지 그 소리가 들려서 울컥했다. 승락이는 목이 다 쉬었더라.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게 정말 좋다.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비결이 있나.
“천운이었다. 중요한 상황에 나왔다고 생각을 하고 전력으로 온 힘을 다해 한 타자, 한 타자를 상대했다. 완급조절을 할 여유가 없었다. 목표가 4이닝 2실점이었는데 그걸 넘어 더 기분이 좋다.”
-목표는.
“이제는 야구를 ‘올해가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한다. 1년, 1년 지나면서 꾸준히, 오래 하는 게 목표다.”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사진=넥센 송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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