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협상 타결 이란의 잠재력
한반도 7.5배 면적 인구 8000만명
교육수준 높고 30대 이하 인구 60%
원유 세계 3위 매장량 등 자원 부국
7개 국가와 인접, 물류허브 역할도
●무역 재개로 유망한 분야는
건설 프로젝트·선박 발주 급증
자동차 부품·전자 제품 수요도 풍부


이란력으로 신년 연휴의 막바지였던 2일. 스위스 로잔으로부터 핵협상 타결소식이 전해지자 이란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하의 의미로 흰색 스카프를 흔들었다. 이란 협상대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부장관이 “국민이 함께 축하해 달라”고 요청한 데 따라 다소 연출한 듯한 분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외부 집회가 엄격히 통제되는 사회에서 모처럼 느끼는 해방감과 함께 오랜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담겨 있었다. 기업인들도 크게 환영하면서 최종 협상에 대해서 낙관적인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제제재로 경기침체 가속화
이란 경제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서방 경제제재는 2002년 8월 반정부단체가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을 폭로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이후 이란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2006년 12월부터 2007년 6월까지 4차례에 걸쳐 유엔의 대이란 제재결의안이 채택됐다. 이슬람혁명과정에서 발생한 미대사관 점거사건으로 이란과 국교를 단절했던 미국은 2010년 7월 포괄적 이란제재법, 2012년 및 2013년 국방수권법 등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위의 제재를 단행했다. 여기에 유럽연합(EU)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동참하고 그 강도가 높아지면서 2012년부터 이란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약 1,100억달러(약 119조원)로 추정되는 해외자산이 동결되고 외국과의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으며,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석유 수출물량도 대폭 축소되었다. 자동차 항공 조선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제품 교역은 물론 컨설팅 기술개발 등 서비스 교역도 금지되었고, 주요 공기업 민간기업들이 제재대상 명단에 포함됐다. 또 국제선사들이 최대 항구인 반다라압바스에 운항을 중단했고, 이란과의 교역 및 운송에 대한 보험도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하루 약 450만배럴에 달했던 원유생산량이 약 30% 줄었고, 수출도 하루 1백만배럴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정부재정 부족과 해외자금 조달이 중단되면서 도로 항만 공항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신규 투자가 지연됐다. 연간 16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던 이란호드로, 사이파 등 자동차메이커의 생산도 70만대 수준으로 감축될 수 밖에 없었다. 푸조 등 외국기업과의 제휴관계가 단절되고 부품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역축소로 인해 기계설비 부품 건축자재 등의 물자 부족현상이 일어났으며, 이에 따라 공공연한 밀수가 성행하고 공사가 수시로 중단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46명의 사상자를 냈던 세파한 항공의 여객기 추락사고도 정비부품이 부족하고 신규항공기 도입이 불가능한 제재 상황의 여파로 볼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공식적 실업률은 12%대이나 실제로는 20%가 훨씬 넘어,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최저 생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하루 1.25달러 미만의 극빈 생활 인구가 전체의 0.7%였는데 그 비율이 늘어나고 있고, 더욱이 그 기준을 3.5달러 수준으로 높일 경우, 전체 인구의 약 6%정도에 해당하는 약 450만명이 극빈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표상으로도 어려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012년 -6.6%, 2013년 -1.9%로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였고, 달러당 1만2,000리알 수준이었던 환율이 2013년 말에는 3만리알로 통화가치가 떨어졌며, 물가상승률은 2012년 30.5%, 2013년 34.7%에 달했다.
탄탄한 경제기반과 무한한 잠재력
2013년 말 P5+1 (유엔상임이사국+독일)과의 공동행동계획(JPOA)이 타결되면서 미약하나마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해외동결자산의 일부(42억달러)가 해제되고, 자동차부품 석유화학 등 일부 제재품목에 대한 교역이 한시적으로 완화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지난해에는 경제성장률 1.7%, 물가상승률 17.2%로 다소나마 회복세를 보였다.
이란 경제에 가장 큰 영향 바로 ‘경제 제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급격히 유가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부분적 완화만으로 회복세를 보여준 것은 그 만큼 이란이 견실한 경제기반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란은 한반도의 7.5배에 달하는 면적과 인구 약 8,000만명의 튼튼한 내수시장 기반을 갖고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30대 이하의 인구비중이 60%를 상회하는 등 양질의 노동력을 갖고 있다.
또 에너지ㆍ광물자원의 보고로 천연가스는 세계가스 매장량의 18%에 해당하는 34조㎥, 원유는 1,540억배럴로 세계 3위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철광석(세계12위), 구리(9위), 석탄(26위), 아연(17위) 등도 풍부하다. 에너지자원 개발은 건설프로젝트 발주로 이어져, 중동전문경제잡지인 MEED는 이란의 건설프로젝트 시장을 약 2,900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UAE에 이은 중동지역 3위의 규모이다.
아울러 중동국가로는 드물게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기반이 갖춰져 있다. 1990년대부터 5년 단위의 ‘경제ㆍ사회개발 계획’을 추진하여 석유의존형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약 700억달러 규모의 국가발전기금을 조성, 활용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도 터키, 아랍에미리트, 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물류허브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란정부는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단거리 해운과 내륙 철도운송을 결합할 경우, 수에즈운하에 비해 30~40%의 시간과 비용이 절감된다며 이를 통해 국제물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비록 실패로 판명됐지만, 이런 경제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를 공언해 왔을 정도다. 서방과의 교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성장 가능한 경제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그 요체다.
경제제재 해제시 유망 분야
핵협상 타결을 계기로 이란은 세계 경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협상결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해외동결자산 회수, 해외자금 조달, 교역제한 해제 등의 효과로 경기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것이다.
우선 석유ㆍ가스분야를 비롯 도로 철도 항만 담수화시설 전력 신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1,600억달러 규모의 건설프로젝트의 발주가 본격화될 것이다. 석유 및 가스의 수출물량 증가는 유조선,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선박 발주로 이어지고, 저유가 기조도 우리 산업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수요도 대폭 확대될 것이다. 현재 승용차 등록대수는 약 1,500만대로 인구대비 낮은 수준인데다, 정부의 노후차량 교체 정책과 맞물려 그 동안 중단되었던 완성차 수출이 재개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란 완성차 메이커의 신규 모델 생산에 따른 주문자상표부착(OEM)용 부품 협력의 가능성이 높고, 사후수리용 부품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또 정부의 산업화 정책 및 기업차원의 생산설비 현대화가 추진됨으로써 플랜트 발주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산업기계 및 설비 철강 건설장비 등의 수요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검사ㆍ진단장비를 비롯한 의료기기 및 의약품 유무선통신 장비 발전설비 전자제품 등의 시장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빗장이 풀리면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나라 기업들이 이란시장을 주목해 왔다. 중국기업들은 공세적인 자세로 중저가 제품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지하철 교량 등 건설프로젝트도 잇따라 수주했다. 푸조는 제재가 해제되면 이란호드로와 라인증설에 협력한다는 조건부 계약을 체결했고, 토탈도 에너지개발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러시아가 원자로를 건설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거나, 일본 설계ㆍ조달ㆍ시공(EPC)기업이 기업연계장기현장실습(IPP)사업의 우선 협상대상자로 지정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 밖에 독일 이탈리아 터키 등의 많은 기업이 사업기회를 찾아 나서고 있다. 외국인의 방문으로 테헤란 시내 5성급 호텔들은 요즘 방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수준이다.
향후 전망과 대응
세계의 이목이 최종 협상결과에 집중되고 있다. 현단계의 타결도 의미가 결코 작지 않지만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것에 불과하다. 미국 이란 양국 내부의 복잡한 정치 상황, 이스라엘 및 수니파 아랍국가들과의 관계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또한 타결선언 직후부터 이견이 표출된 제재해제 방법, 사찰범위 등 쟁점사안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협상과정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협상 타결로 인한 경제제재 완화가 주는 효과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낙관적 의견이 조금 우세하지만, 결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최종 협상시한의 연기 가능성도 높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협상과정에서 나오는 뉴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이란시장의 개방에 차분히 대비해야 한다. 제재로 인해 블루오션으로 남아 있는 이란시장 선점을 위해 꾸준한 정보수집, 바이어 발주처 유관기관 등과의 네트워크 강화, 진출전략 수립 등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한편으로는 가변성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위험관리 대책 마련 등 착실한 준비가 지금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승욱 KOTRA 테헤란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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