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길러 본 적 있다. 생후 2개월쯤 된, 버려진 암컷이었다. 나조차 불안하고 서먹해질 정도로 유난히 예민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차츰 적응이 되자 나름 장난도 치면서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몸집이 점점 내 팔뚝 만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발정을 시작한 것이다. 아기울음소리 같은, 갈증과 고통과 불만이 한데 섞인, 참혹 직전의 소리를 매일 밤 좁은 공간에서 라이브로 듣는다고 상상해보라. 잠을 잘 잘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중성화 수술은 할 짓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종(種)이 가진 가장 근원적이고도 핵심적인 본능을 거세시켜야 한다는 걸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 애묘인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끝끝내 병원엘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녀석은 어느 날 창문을 뛰어넘어 동네 장정들을 잔뜩 후리고 돌아와선 이내 배가 볼록해졌다. 그러고는 얼마 후, 네 마리 순산. 갓 젖 뗀 새끼들 모두 분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발정. 다시 가출.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주 정도 지났을까. 외출 길에 근처 브런치 집 한편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둘 사이에 정지화면 같은 긴장이 흘렀다. 문득 가게 안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문 안으로 꼬리가 사라지기 직전, 녀석은 내 쪽을 훌쩍 돌아다봤다. 줄 게 있거나 받을 게 남아있는 사람의 눈빛을 닮았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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