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륜 조향장치 단 차종 속속 출시
앞바퀴 따라 최대 4도 움직여
접지력 향상 무게중심 쏠림 막아
주차·유턴할 때도 유용
자동차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1800년대 후반만 해도 거의 모든 자동차는 뒷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후륜구동 방식이었다. 앞바퀴에는 운전대 조향축과 충격흡수장치 등이 연결돼 기본적으로 구조가 복잡한 탓에 엔진 구동력까지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뒷바퀴는 밀고, 앞바퀴는 방향을 조종하는 역할 분담이 뚜렷했던 시기였다.
기술의 발전은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았던 전륜구동 차량을 현실화했다. 전륜구동은 잘 미끄러지지 않는데다 동력을 뒷바퀴로 전달하는 구동축이 없어 실내공간이 넓다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로 1930년대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퉈 전륜구동 모델을 내놨다. 앞바퀴가 끌고 방향타 역할까지 맡게 되니 뒷바퀴는 그저 차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앞바퀴에 끌려 다니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됐다.
그랬던 뒷바퀴가 최근 들어 조향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됐다. 엔진과 변속기 기술의 진화로 무섭게 빨라진 자동차 속도를 탁월한 주행성능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자동차 업체들의 전략이 반영됐다.
포르쉐는 911 터보에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라는 장치를 얹었다. 이름 그대로 후륜 조향장치다. 이 장치는 차량 속도에 따라 뒷바퀴의 조향각을 좌우로 최대 1.5도까지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운전자가 시속 50㎞ 미만에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앞바퀴는 오른쪽, 뒷바퀴는 왼쪽으로 틀어진다. 이렇게 되면 회전 반경이 짧아지면서 방향 전환이 훨씬 민첩하게 이뤄지게 된다.
고속에서는 운전대를 움직이는 방향으로 앞ㆍ뒤바퀴가 같이 돌아간다. 승객들은 차가 회전한다기보다 쏠림 없이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포르쉐 관계자는 “민첩성과 주행 안전성은 물론 레이싱카에 근접한 핸들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혼다는 올해 출시한 5세대 뉴 레전드에 4륜 정밀 조향장치 ‘P-AWS(Precision All Wheel Steer)’를 장착했다. 기본적으로 포르쉐의 리어 액슬 스티어링과 같지만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뒷바퀴가 앞쪽으로 모아지면서 제동력을 크게 끌어 올린다. 스키 앞 부분을 모아 ‘A’자로 만들어 제동력을 극대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장치를 채택한 이유에 대해 혼다는 핸들링이 훨씬 정교하고 부드러워 운전자와 동승객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 P-AWS 등 후륜 조향장치가 장착된 차는 언더스티어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언더스티어는 빠른 속도로 코너에 진입할 때 앞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으면서 코너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현상인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후륜 조향장치가 있으면 한쪽 타이어에만 무게 중심이 과도하게 쏠리는 것을 막아 접지력을 잃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현재 양산 차에 장착된 후륜 조향장치는 좌우로 최대 4도까지만 움직인다. 회전반경이 일반 차량과 확연히 차이가 나면 사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후륜이 움직이는 각도를 늘려 주차나 유턴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인주행장치, 차체 자세 제어장치 등 첨단 시스템과 연동될 경우 차가 스스로 주차하면서 제자리에서 90도, 360도 회전기술을 선보일 날도 머지 않았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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