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기술 이해능력 키우자"
빌딩 수도관·선박의 구조 등
기본 작동원리에 호기심 가져야
임태훈 "디지털 정보 독점 깨자"
홍성욱 "적정기술 활용하자"
쓸데없이 복잡하게 발달된 기술보다
단순한 기술이 인간 생존에 도움
구글은 왜 내 클릭 흔적을 소유할까. 일상생활에서 늘 쓰는 기계들의 구성 원리에는 어떤 비밀이 자리하고 있을까. 휴대폰 인터넷은 조금 느려도 좋으니 지금보다 싸게 쓰면 안 될까. 제품화되는 기술이 꼭 더 나은 기술일까. 주변의 기술과 기계, 디지털문명 없이 하루도 버텨내지 못하면서도 그 작동원리나 기술의 이면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관심한 수많은 이들에게 세 학자가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홍성욱 국립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이 그들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프로메테우스 3인이 기계비평(이영준), 디지털비평(임태훈), 적정기술(홍성욱)이라는 기술문명 비평 칼럼을 통해 탁월한 식견을 선사할 예정이다. 연재에 앞서 3일 마주앉은 세 사람은 “현대인은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까”라는 첫 질문에 대해서만 1시간 넘게 치열한 평가와 제안을 주고받았다.
-현대인은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까.
일동=“당연히 모른다.”
임태훈 위원장=“아버지 세대만 해도 집에 뭔가 고장 나면 목공 하고 못 박으며 기본적 생활기술을 발휘했지만, 점점 그게 어려워진다. AS센터 가져가거나 버리거나. 필요할 때 구입하고 쓸 수 있으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커졌다.”
홍성욱 소장=“이해를 떠나 작동법을 익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기술이 발달한 탓이다.”
이영준 교수=“컴퓨터만 해도 기껏 다운됐을 때 복구시키는 정도지 기술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에는 접근할 수도 없다. 자동차도 엔진전자제어기술(ECU)이 발달해 예전처럼 다짜고짜 뜯어선 손도 못 댄다. 갈수록 테크놀로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사람들은 소비자화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최소한의 작동원리 정도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술 리터러시(이해능력)을 키우자는 거다.”
임=“맞는 얘기다. 계속 무관심 상태로 있으면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든다. 초기 인터넷은 지금처럼 꼭 서버를 경유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버를 거치지 않는 인터넷’이라는 선택지가 없어졌다. 일반 대중은 선택지가 사라진 것이 왜 심각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늘의 별과 달, 태양처럼 지금의 인터넷은 원래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 시장 질서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가능한 인터넷을 수익 모델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정보 자산을 독점하려면 지금 같은 서버 클라이언트 위상 구조 인터넷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인터넷은 가두리 양식장이나 다름없다. 그 비참함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홍=“뭐든 그렇게 의존성이 강해지는 추세다. 스마트폰도 의존성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가. 동일본 지진 때 현지에서 온 분이 ‘휴대폰 충전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공포였다. 알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설악산 대피소에도 충전기가 그득하다. 시간도 알아야 하고, 휴대폰 없으면 산에도 갈 수 없다. 기술과 기계가 사용되는 상황이 무지를 조장한다. ‘몰라도 돼’ ‘이거 하나면 돼’라며.”
홍=“중요한 문제다. 도시생활은 돌발상황에 취약한 구조다. 우리가 맥가이버는 못 돼도 생존기술 정도는 가져야 한다. 갑자기 스마트폰도 전기도 쓸 수 없을 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고민도 해가며.”
-모든 이들이 기계와 기술을 이해해야 하나.
임=“지식에 매뉴얼로 만들어지는 형식지와 문화적으로 노하우라고 전수되는 암묵지가 있지 않나. 암묵지의 차원이 점차 사라진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사람들이 디지털에 안주하면서 포기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망치 하나 들고 열차를 땡땡땡 치고 다니면 어디가 고장 났는지 알 수 있었다면 이젠 그런 능력이 사라진다.”
홍=“애초 기술이 추구했던 바, 즉 원형을 고민해야 한다. 고가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단순한 기술, 적정한 기술이 우리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기술 리터러시도 키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에서 중산층이 무너지지 않았나. 그 와중에 개도국용으로 개발된 ‘싸고 튼튼하고 단순한 기능’의 제품들이 역수입되는 리버스이노베이션이 벌어지고 있다. 휴대전화도 소통만 되면 되지 꼭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동영상을 1분 안에 다운받아야 할까.”
이=“그런 매커니즘의 이해가 대상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다. 전시회에서 미술을 볼 때도 작가가 이걸 왜, 어떻게, 어떤 형식과 절차로 만들었을지 궁금하지 않나. 기술과 기계도 궁금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제가 하려는 것도 그런 거다. 호기심을 가져보자. 거기서 출발하는 거다. KTX를 타더라도 궁금해 보는 거다. 세월호도 배 구조에 대해 학생들은 당연히 몰랐을 테고 어른 중에 관심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거다. ‘얘들아 그 쪽은 위험하니까 이리 나와’라고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홍=“일종의 우리 위기대처능력이 필요한 거다. 현장에 그런 것을 아는 분이 구조에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이=“한 두 사람으론 역부족이었다.”
임=“지난 100년에 걸쳐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끌어올려졌다면, 기계맹 예술맹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턱없이 부족했다.”
홍=“기술과 제품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중심에서 생각하는 훈련도 중요하다. 지금은 ‘인간이 정말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보다 ‘그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 너무 집중하고 있다.”
임=“대부분 사람이 기계와 기술을 모르고 안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할 시간도 없고.”
이=“물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시간이 없진 않다. 우리 생활의 템포 자체가 시간이 없도록 느껴지게 만든다.”
홍=“바빠도 휴대폰은 2시간씩 들여다보지 않나.(웃음)”
임=“1930년대 발터 벤야민 말한 ‘산만한 지각’이 훨씬 더 강해진 것 같다. 라디오 듣고 영화도 보고 광고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도하고.”
홍=“좋게 말하면 멀티태스킹, 나쁘게 말하면 분열이다.”
이=“벤야민도 몰랐던 게 있다. 요즘 몰입도가 엄청 강하다. 침잠은 끌어당겨 어느 사고에 이르게 하지만 몰입은 끌어당겨 휘두른 뒤 팽개친다. 게임에 몰입된 뒤 나오면 허무하다.”
홍=“정작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인간중심의 기술에 대해 고민할 여지나 시간은 없다.”
-앞으로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
이=“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옷을 뜯어보게 한다. 생각보다 복잡하다. 주머니만 해도 보기보다 복잡하다. 제가 하려는 기계비평은 쉽게 말하면 그런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생활주변에 있는 다양한 기계 및 시스템의 뒷면, 얼개를 보자. 빌딩에서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게 하는 것,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서로 막힘 없이 운행되게 하는 것이 모두 흥미로운 기계와 시스템의 작동으로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기계 리터러시를 키우자는 거다.”
홍=“적정기술은 한국에서는 늦게 소개됐지만 70년대에 광풍이 불었던 미국에서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가 처음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소규모 기술, 중간기술 개념을 말한 지 50년 됐다. 기술이 너무 복잡한 쪽, 쓸데 없이 바쁜 쪽,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쪽으로만 발달하고 그에 대한 역작용들이 나오고 있다. 보다 적정한 삶과 인간 중심의 기술에 대해 고민하고 논하려 한다. 기술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인간중심의 소위 적정기술적인 사고가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임=“근대문학이 가능하기 위해 글을 읽는 능력이 대중화해야 하는 것처럼, 기계맹이 극복되지 않는 한 3D프린터가 나와 봐야 한 10년은 신기한 장난감에 그칠 것이다. 앎에 대한 독점을 깨야 한다. 디지털은 유독 독점이 심하다. 핵심에 해당하는 기술일수록 아는 사람이 적고 철저하게 전문화 분업화되면서 무지의 벽, 바보의 벽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다. 다음 벽으로 넘어가려는 의욕도 없다. 몇 안 되는 대기업이 전세계 소비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토양이다. 이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 볼 것이다. 200명만 아는 기술을 1,000만명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왜 내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는지 고민하자는 거다. 우리는 디지털 중세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질문 목록을 공유해야 한다.”
홍=“세 분야가 글의 소재는 달라도 저변에 깔린 공감대가 상당히 일치한다. 글이 기대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이영준 교수는
미술사 박사이자 사진비평가로 국내에서 처음 기계비평 장르를 개척해 인문학계에 팬덤을 형성했다. 계원예술대 아트계열 융합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기계비평’ ‘초조한 도시’ ‘페가서스 10000마일’ ‘기계산책자’ 가 있다.
◆임태훈 위원장은
미디어의 역사, 소리의 문화사를 탐구하는 문학평론가로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99년 삼성문학상 희곡부문에 수상했으며 2006년 문학비평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검색되지 않을 자유’ 가 있다.
◆홍성욱 교수는
국립 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이자 적정기술연구소장이다. 국내 유일의 적정기술 관련 논문집인 ‘적정기술’의 발행인 겸 편집위원장과 적정기술미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인간중심의 기술 적정기술과의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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