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 과정 관료사회 민낯 여실히, 성급한 결정에 1년 간 성과는 빈약
'시간 지나면 잊혀질 것' 안이함, 박 대통령 초심 살릴 기회 놓쳐
'이대로는 안된다'는 시대정신, 여권 방어적ㆍ진영적 논리에 묻혀
행정부가 입법부 기능 훼손, 특별법 시행령은 당장 폐기해야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졌는가. 달라지려는 시도는 하고 있나. 참사 1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세월호에 잠겨 있다. 규명해야 할 진상이 남아 있는데도 특별법에 의해 특별조사위원회는 시행령에 막혀 제대로 출범하지 못했다. ‘개조’라는 표현에 담긴 ‘다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는 정치 공방 속에 실종됐다. 국가에 대한 분노와 과장된 피로감에 대한 수사(修辭)만 공허하게 떠돌았다.
한국일보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팽목항 안산 등을 수 차례 방문해 현장을 지켜보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해 온 박명림 연세대 교수에게 세월호 이후 국가 재생의 길을 물었다. 8일 오후 한국일보사 편집국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담에서 두 학자는 “그렇게 많은 국민 생명을 망실하고도 국가 개혁 의제마저 잃어버린 것은 지난 1년의 최대 비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꼽히는 이 교수가 보다 진보적인 박 교수보다 시종 비관적이었으나, 결국은 정치의 강화가 병폐 극복과 공동체 회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대담=김희원 문화부장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선 진단해 보자.
박명림 교수=“세월호 침몰의 요인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보여줬다. 구조의 실패는 정부의 능력 리더십 판단 즉 집행력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참사 이후의 진영논리에 따른 논쟁 모욕은 보편적 시민 윤리나 공동체 덕성의 결여를 보여줬다. ▦침몰 ▦구조실패 ▦사후대처 세가지 점에서 참사는 우리사회의 속살과 민낯을 그대로 보였다.”
이상돈 교수=“새 정권이 출범하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철학과 전략이 있게 마련인데 박근혜 정권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침몰사고 자체가 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응과정에서 기강이 무너진 오합지졸 관료사회의 실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초 해양수산부 부활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해수부는 해운, 항만, 수산, 원양 등 거대한 먹이사슬이 얽혀 있고 해경 조직도 관련돼 부처 설계가 까다롭다. 그런데 첫 장관(윤진숙)에 (인사청문회 등에서) 온 국민에게 우습게 보인 인물을 임명했으니. 첫 장관은 기존 정책을 리뷰하고 새 정부의 철학을 심어야 하는데, 그런 인사로 심기일전은커녕 오합지졸이 됐다. 이런 인사 실패로 정부가 세월호 문제를 푸는데 한계가 있었다. 대통령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 시발점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여당을 중심으로 나라가 통합해 위기를 헤쳐나가기 마련인데 오히려 국가적 분열을 겪었다.
박=“문제의 핵심이다. 사태가 처음에 준 충격과 경악, 국민 모두의 공분 속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재생하라’는 국가 전체의 공동의제로 접근했다면 대통령, 정부, 여야의 접점이 마련되고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다. 대통령이 그 시대정신을 정면 돌파했어야 했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우리의 책임을 묻는 게 아닌가’ 하면서 정부 방어, 대통령 보호, 진영 논리로 의제를 축소시켰다. 거기서부터 대치가 되고 전체 의제가 실종됐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관료와 기업의 유착, 낙하산 구조 등을 해결했어야 하는데 기존의 관료와 낙하산 인맥을 가지고 개혁을 하려니 선후가 바뀐 것이다.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대통령이 개혁의 대상이 되면서 세월호 개혁 의제를 상실한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다. 지금은 그 때의 개혁의지도 시대정신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이=“박 대통령이 임기 초기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해 방어하느라 급급했고, 끝나가는 국면에서 세월호가 터졌다. 그런데 천재지변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였고, 인사 실패 등에 대한 치부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대뜸 해경해체와 관피아 척결을 들고 나왔지만 그야말로 성급했다. 해경 해체만 해도 도대체 누구랑 어떤 의사결정과 검증을 통해서 내놨는지 알 수 없고, 관피아 척결 역시 1년 동안 한 게 없다. 이 역시 총리 교체 인사에서부터 망가졌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는데 무너졌고, 6?4 지방선거 때 여당이 선전하니까 이제는 ‘다 끝났다’며 기고만장해 아예 엉뚱한 인물(문창극)을 냈다가 또 낙마했다. 그 과정을 보면 참 이 정부는 지독히 못한다. 너무 창피하다.”
-야당 역시 세월호를 정쟁화한 책임이 있어 보인다.
이=“야당은 사실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의제화를 자제했었다. 그렇지만 여당의 구태에 따라 야당도 강경해졌다. 특별법 합의과정에서 박영선 대표가 합의안을 덥석 받았다가 난리가 났는데 사실 그 기본 골격은 맞다고 본다. 청와대가 양보를 못하는 집단이니까 대화를 풀 수 있는 첫 단추를 야당이 끼우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합의안에 동의하면 마치 야당에서 떠야 할 것처럼 매도했다. 반성할 부분이다.”
박=“야당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야당조차 유족, 국민과 원활한 소통을 했는지 의문이다. 전체 개혁의제는 대한민국 공통의 해법으로 접근했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대통령과 정부비판에 집중했던 것이 전략적으로도 실수다. 또 유족이 제안하지 않은 의사자 지정문제, 특례입학 등의 의제가 먼저 잘못 알려지면서, 공통의 개혁 의제가 급속하게 실종됐다. 둘째, 장기적으로 야당은 전문성 있는 관료들을 비판ㆍ돌파하기 위해 어떤 문제든지 연구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야당이 정치공세가 아닌 정확한 문제진단을 하려면 더 전문적 훈련 필요하다. 천안함 때도 그런 걸 느꼈다.”
-침몰사고가 난 이후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나.
이=“청와대고 정부고 완전히 패닉이었다.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국민을 위로하고, 여야가 모으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대통령이 섣부르게 답을 내버리고 그 이후는 그 답을 정당화시키려 하다 보니 입지만 좁아졌다.”
박=“이 사태는 우리사회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이 참사를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철학의 수준이, 어떤 대안을 내느냐에 따라 정부와 국가의 능력이, 어떤 합의점을 찾느냐에 시민사회의 덕성이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정부 여야 정당 학계 시민사회가 세월호 백서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본다. 공통으로 백서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공통의 위원회가 문제진단, 해법모색, 대안제시를 공통으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에 누가 백서를 내도 믿을 수 없는 단계가 돼 버렸다. 공통의 문제 진단에 실패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특조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얼마나 기대하나.
이=“별 기대가 없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수사와 감사를 넘어선 참사의 큰 배경이다. 사고 자체의 원인보다 여러 방어막이 왜 다 뚫렸는지. 그런데 조사위원 면면을 보면 여당에서 마지못해 구성은 했지만 열의가 없는 것 같다.”(이 교수는 “참사 직후 대통령의 7시간은 국민의 알 권리”라고 주장해 왔다)
박=“특조위 조사는 공화주의 원칙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일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집행의 문제점을 행정부가 아닌 국민 대표인 입법부가 규명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검찰 수사와 감사원 조사로 끝난다면 관료의 자기 조사에 그친다. 그런데 지금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대표가 만든 특별법을 정부가 시행령으로 뒤집으려는 것이다. 행정부가 입법부 기능에 도전하는 것이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반이다. 중대한 위헌이다. 시행령이 모법의 근본 정신과 원칙을 훼손하는 삼권분립에 대한, 국민대표에 대한 부인이자 도전이다. 박근혜 정부가 전례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여러 과거사에 대한 정부의 진상조사 노력 등에서의 모든 기본원칙을 무너뜨린다. 시행령이 관철된다면 앞으로 어떤 중대사태에 대해서도 국민의 대표가 집행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시행령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이대로는 새로운 진상규명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국민 대표를 이렇게 훼손하고 농락해서는 세월호가 무엇을 남겼는지 회의가 들고 좌절하게 만든다.”
이=“특조위 결과가 오히려 수사나 감사보다 더 퇴행할 수 있다. 다만 이석태 위원장이 강단이 있어 어쩌면 위원회를 박차고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 그러면 차기 정권의 과제가 되지 않겠나.”
박=“그렇게 되면 과거 청산이 되는데 그래선 안 된다. 만약에 박 대통령이 나부터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다면 관료사회도 달랐을 것이다. 정부 관료들이 ‘대통령도 조사 받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구나’ 하면서 국가기강이 확립되고 관료 보신주의가 철폐됐을 것이다. 그 모멘텀을 놓친 것이 안타깝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특조위에 힘을 실어주고 청와대도 조사하라고 해야 한다.”
이=“그야말로 희망사항이다.”(웃음)
박=“그래야만 스스로도 세월호의 논란에서 벗어난다. 특히 국민합의 하에 세월호 백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기구의 행동준칙, 단계별 대응, 편제가 정리된다.”
-대통령이 ‘나부터 조사하라’고 하면 장기적으론 지지율이 오를 것으로 본다. 세월호 인양도 여론에 따라 검토 쪽으로 기울었듯, 여론이 계속 요구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이=“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기대는 있는데.”
박=“(이 교수가) 대통령을 잘 알아 더 비관적인 것 같다. 세월호 인양도 진상규명과 안전국가 건설에 도움이 된다면 해야 한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50조원이 투입됐는데, 국민의 생명 망실과 안전국가 건설이 걸려있는 문제에 2,000억 예산이 많다고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모독이다.”
이=“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이 국정원 선거 댓글 사건부터 시작해서 사안을 정면으로 풀지 못하고 버텨서 잊혀지기만 기다려왔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1년만 지나면 잊혀지겠지. 선체가 올라왔을 때 사람들에게 사건이 각인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여론이 반반 정도면 버텨볼까 했는데 아니었다. 그게 민심이다. 세월호 사건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를 청와대에 보여준 것이다.”
-1년이 지났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을 통합하고 구조적 병폐를 해결하고 국가시스템을 재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첫 기회를 놓쳤다. 참사 직후 총리를 위시해 대규모 쇄신개각을 했어야 했다. 그게 안 되니 계속 안 되는 거다.”
박=“형사적 책임과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 정부 장관 정당을 포함한 가장 중요한 정치ㆍ결정ㆍ리더십 영역은 책임에서 방면되고, 실무적인 수준에서 책임을 묻는 데에 그쳤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세월호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계속 남는다. 야당이 특조위에서 철수함으로써 오로지 정부 여당에 사태의 해결을 온전히 맡겨서 오히려 스스로 경각심 갖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시기가 좀 늦었지만 애초에 야당과 시민사회가 특조위에 참여하지 말고 박근혜 정부에 진상규명을 책임을 넘기는 게 낫다고 주장했었다.”
이=“맡긴다고 책임을 느낄 정부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우선 특조위의 불씨를 가져가보고 정말 문제가 생길 경우 (특조위 탈퇴 같은) 심각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권도 판을 깰 경우 정국 경색 책임에 대한 부담이 크다. 문제는 특조위가 시작도 못할 것 같다. 한심하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이야기한다면.
박=“한국사회는 관료기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혀 모른다. 세월호, 방산비리, 4대강이 터지면 그때서야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거대한 예산집행의 잘못과 보신주의의 실태를 안다. 정당과 정치, 의회를 키우지 않고는 관료기구의 무능과 비공개주의를 견제할 수가 없고 세월호 같은 문제가 계속 생긴다. 국회 정원이 최소한 700명은 돼야 하고, 역할도 키워야 한다. 우리 국회는 예산(신설), (내각)인사, 감사 등에 대한 권한이 없다. 그러니 반대하고 비판하는 소극적 정치밖에 못한다. 혐오 조롱 비판만 해서는 시장 재벌 관료를 견제할 수 없다. 의회가 적극적 정치를 하는 선진국에선 대규모 방산비리 같은 일은 극히 예외적이다. 의회의 입법권이 정부의 집행권과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관료, 대통령, 정부의 독주에 따른 국가의 흠결을 메울 수가 없다.”
이=“여야가 정치 쇄신을 외쳤지만 헛된 공약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관료들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전례 없는 완전한 냉소 상태다. 영(令)이 안 서는 현상이 빨리 왔다. 레임덕의 상시화다. 그러니 개혁이 불가능하다. 나는 한 때 박 대통령을 옹호했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의회주의자라고 했고 이명박 정권 때 4대강 자원외교 등에 반대했다. 그런 자세 덕분에 대통령이 된 것이라고 본다. 되고 난 뒤는 달랐다. 세월호라는 큰 사건은 초심을 살릴 기회라고 봤는데 그 마지막 기회를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의회를 키우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정치 혐오가 심한 국민들이 납득할까.
이=“의회가 국민대표라기보다 파당이 돼 버렸지 않았나. 독일 정도가 파당정치를 극복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갈수록 더 하다.”
박=“선진국이 대부분 의회책임제로 가는 것은 다수가 토론한 정책이 그나마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판단 하나로 4대강, 자원외교 등 국민이 100년간 부채를 부담해야 사업들이 결정됐다. 의회 몇 백 명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또 비리도 의회 비리에 비하면 천 배, 만 배다. 비판의 초점이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관료에 놓여져야 한다.”
이=“전문가들은 의회주의를 선호하는 게 사실이나 여론은 그렇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대통령을 좋아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제에) 혐오하기 전까지는 유럽식으로 가긴 상당히 어렵다.”
박=“이 교수님이 계속 비관적으로 젊은 학자의 희망을 꺾으신다. (웃음) 시간이 걸리겠지만 실패는 할 만큼 했다.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할 때는 상당히 기대했다 급속도로 실망하는 기대와 환멸의 반복됐다.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갭이 커지는 팬들럼 현상이 심각하다.
-남은 과제는.
이=“이 정권에서 전향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이른바 시민사회와 야당에서 할 대응만 남았다. 내년 총선이 평가를 할 것이다.”
박=“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너무 크고 1년 만에 마음 속에 떠나 보내기에는 개혁과제가 너무 중차대하다. 특히 다음세대에 이런 최악의 국가를 물려줄 수는 없다. 특조위 역할과 기능을 빨리 여야 합의하에 회복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정부가 진상조사에 최대한 협력하며 세월호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잊지 않도록 사회의 역량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정리=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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