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추모행사 중 유가족 연행 소식, 참가자들 광화문으로 행진 시작
경찰, 1주기 때처럼 차단벽 세우고 최루액에 살수차 동원 강경 진압 100명 연행 71명 분산해 조사
일부 과격 시위에 차량 71대 파손
주말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정면 충돌했다. 올해 들어 처음 살수차를 이용한 경찰의 ‘물대포’ 진압에 희생자 유가족 등 집회ㆍ시위 참가자 100명이 연행됐고, 경찰도 차량 수십여대가 파손되고 70여명이 부상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3시30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가 개최됐다. 유가족과 시민 3만명(경찰 추산 1만명)이 모인 가운데 참석자들은 세월호 선체 인양과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며 애도 분위기 속에 행사를 이어갔다.
문제는 행사 예정 시간이 절반 정도 지난 오후 4시30분쯤 터졌다. 광화문 앞에서 연좌 농성 중이던 유가족 11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참석자들은 태평로로 쏟아져 나와 광화문 누각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이에 경찰은 16일 세월호 1주기 때보다 3,000여명 늘어난 경찰력 1만3,700명과 차벽 트럭 18대, 경찰버스 47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 일대를 봉쇄했다. 차단벽과 안전펜스는 광화문 옆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과 광화문 광장 북쪽, 세종대왕 동상 앞, 세종로 사거리 등 여섯 곳에 쳐졌다.
차단벽에 가로 막힌 집회 참가자들은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계천변을 따라 우회했고, 종로2가 낙원상가 방면으로 돌아간 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방향에서 광화문 쪽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시 안국역 인근 종로경찰서 앞 차로에서 막히자 뿔뿔이 흩어져 지하철 등을 이용해 광화문광장으로 집결했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오후 6시20분쯤 세종대왕상 저지선을 두고 격렬하게 부딪쳤다. 경찰은 유가족에게 가려는 참가자들을 향해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시위 진압에 물대포가 사용된 건 지난해 6월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범진보진영의 2차 시국 집회 이후 처음이다. 이에 맞서 일부 참가자들도 폴리스라인 펜스를 던지며 차벽으로 세워뒀던 경찰버스를 부수고 들어가 차량 안의 분말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한 참가자는 준비해온 태극기를 불태웠다.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정부와 경찰을 비난하는 낙서도 여럿 눈에 띄었다. 시위는 오후 10시30분쯤 광화문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합류하면서 마무리됐다.
과격 양상으로 치달은 이날 세월호 집회는 양측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경찰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포함한 유가족 21명 등 100명을 집회ㆍ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했다. 유가족과 고교생 참가자 등은 일찍 풀려났으나 71명은 서울 시내 11개 경찰서로 분산돼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도 의경 1명이 시위대의 메가폰에 맞아 왼쪽 귀가 3㎝가량 찢어지는 등 74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쇠꼬챙이에 찔려 바퀴가 주저 앉는 등 차량 71대와 경찰장비 368점도 파손됐다.
경찰은 손해배상 소송 청구 등 폭력 시위에 대한 엄단 방침을 천명했다. 경찰청은 일요일인 19일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자청해 전날 행사를 불법ㆍ폭력 시위로 규정하고 “시위 주동자 및 극렬 행위자를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 하겠다”고 밝혔다. 박재진 경찰청 대변인은 “서울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5개 지방청에 수사전담반을 꾸리기로 했다”며 “주최 당사자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범국민대회 주최 측은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투입이 충돌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래군 4ㆍ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경찰이 행사 전부터 차벽을 설치해 평화롭게 유가족을 만나려는 참가자들을 자극하는 등 집회 자체를 위축시켰다”며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공권력 남용이었다”고 비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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