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색색의 꽃다발을 내밀었고 소녀의 손도 머뭇머뭇 들리는 중이다. 조화(造花)면 어떻고 조화(弔花)면 어떤가. 저 순간 주고 또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면 그만이다. 18일 스페인 북부 발데노세다(Valdenoceda)라는 작은 마을의 오래된 공동묘지. 봉분 없는 묘의 십자가 비석이 죽은 자의 시간 속에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오른편 소녀는 다른 자리로 옮겨 가려는 모양이다. 무심한 듯 외면하며 장난감 유모차의 길을 찾는 소녀의 심정은 어떨까. 눈빛처럼 덤덤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작은 마을이라니 셋은 친구일 테고, 어쩌면 함께 놀자고 나온 길이었을 수도 있다. 자리를 벗어나 외진 곳에 닿자마자 아무 생각 없는 유모차의 인형을 끌어안고 울먹일지도 모른다.
상처가 없을 수는 없다. 의도와 무관하게 닥치는 고통,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상실과 눈물이 저 묘지 위에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늙고 저 묘지에 자신들의 자리를 봐야 할 시간이 찾아올 테고, 비석은 또 그 세월만큼 조금 더 평화롭게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묘지가 평화로운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발데노세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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