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입찰에 막판 3곳 참가… 토종 벤처, 다시 희망 품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추락, 1조 부채 등 앞날은 '캄캄'
“급한 불만 껐지, 집안 화재가 모두 진압된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해지면서 한숨만 늘었습니다. 가족들 볼 면목도 없고….”.
의외였다. 기뻐할 법도 했지만 팬택 직원들 대부분은 냉랭했다. 공개매각 예비입찰에 예상을 깨고 인수의향서가 제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7일 서울 상암동 팬택 사옥 내부분위기는 그랬다. 청산이란 벼랑 끝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앞날에 직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다른 팬택 직원은 “인수의향서가 제출됐다고 해서 당장 회사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며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다. 이날 팬택 사옥 주변엔 삼삼오오 모여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만 연신 피워대는 직원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로 법정관리 중인 ‘토종 벤처’ 팬택의 공개매각 예비입찰 마지막 날인 이날 극적으로 세 곳이 참가했다. 한국업체 두 곳, 미국업체 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날까지 인수의향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4주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청산절차에 돌입해야만 했던 팬택은 회생을 위한 한 가닥 희망을 다시 품을 수 있게 됐다. 법원과 채권단은 앞으로 이들 업체들을 상대로 팬택 인수조건 여부 등을 심사하고 최종 인수자 선정에 들어갈 계획이지만 험난한 가시밭길을 넘어야 한다. 최악의 상황만 피했을 뿐 팬택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녹록치 않아서다. 당장 곤두박질치고 있는 실적을 끌어올리는 게 만만치 않다. 지난해 팬택 매출은 5,741억원에, 영업적자는 1,537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전년(매출 1조3,356억원, 영업적자 2,971억원) 대비 매출은 절반 이상 감소했고 영업적자 폭도 줄어들긴 했지만 흑자전환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10% 안팎으로 떨어진 국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해외시장에서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1조원에 가까운 부채 또한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인지 당초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일인 이날 오전까지도 의향서를 제출한 곳이 없었지만 마감시간인 오후3시를 앞두고 한꺼번에 의향서가 제출됐다.
그 동안 팬택의 새 주인을 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9월 1차 매각 시도 당시 마땅한 인수 후보자가 없어 한달 뒤 2차 매각에 들어갔다. 이후 해외업체에서 인수의향을 내비치는 등 M&A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올해 1월 미국 자산운용사인 원밸류에셋매니지먼트가 후보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인수계약은 이 업체가 인수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무산됐다. 이처럼 장기간 ‘희망고문’을 당하면서 팬택 직원들은 감정선이 점점 무뎌졌다. 팬택 관계자는 “인수의향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지난 번처럼 기대감만 갖게 하고 또 무산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아직도 많은 직원들은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크다”고 전했다.
회생을 믿고 직원들이 보여준 희생이 컸기에 팬택의 아픔은 더욱 크다. 2013년 8월부터 과장급 이상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월급의 10~35%를 회사에 반납했으며 그해 12월부터는 전 직원이 급여의 20%를 자진해 내놓았다. 현재 유급휴직에 들어간 임직원은 전체 1,500여명 직원의 절반 수준인 700여명에 달한다.
1991년 토종 벤처 기업으로 출발한 팬택은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7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세계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바뀔 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경쟁에서 밀려났고, 무리하게 해외사업을 확장하다 자금부족까지 겹쳐 위기를 맞았다. 팬택 직원들의 희생이 극적인 부활로 이어질 지 두고 볼 일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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