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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독립전쟁, 밀수의 자유 위한 투쟁이었다

입력
2015.04.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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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의 나라 미국 피터 안드레아스 지음ㆍ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604쪽ㆍ2만8,000원
밀수꾼의 나라 미국 피터 안드레아스 지음ㆍ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604쪽ㆍ2만8,000원

밀수꾼이 세운 나라. 밀수로 성장한 나라. 지금도 전 세계적인 불법무역과 엮인 나라. 미국 브라운대 정치학과 교수 피터 안드레아스는 미국의 역사를 이렇게 요약한다. 한마디로 ‘밀수꾼의 나라’다. 하기는 지은이가 재직 중인 브라운대도 미국 건국 초기의 대표적 밀수꾼 존 브라운이 세운 학교다.

저자는 탄생부터 현 오바마 정부까지 미국의 역사를, 방대한 출처와 자료, 일화를 제시해가며 밀수의 역사로 풀어낸다. 독립전쟁부터 자유와 인권이 아니라 밀수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다시 쓴다. 식민지 시절 영국이 매긴 높은 관세와 무역 장벽 탓에 밀수가 어려워지자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됐고,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보스턴 차 사건도 영국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밀수품보다 싸게 차를 팔자 쫄딱 망하게 된 밀수꾼들이 일으킨 사건이다. 역사 교과서는 이 사건을 영국 정부에 대한 ‘조세 저항’이라고 쓰고 있지만, 속을 뒤집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영국이 패배한 것도 워싱턴 군대에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밀수 화물선을 막지 못한 탓이다.

마음껏 밀수할 수 있는 자유에서 출발한 애국심으로 독립전쟁에 승리한 뒤, 미국은 사람과 땅, 지식을 밀수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영토 확장에도 밀수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밀수꾼들은 유럽인들이 모피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부 인디언들에게 접근, 밀수한 독한 럼주를 팔고 그 대가로 모피를 받았다. 덕분에 밀수꾼들은 떼돈을 벌고 미국은 영토를 넓혔지만 인디언들은 술독에 빠지고 살던 데서 쫓겨났다. 미국 독립의 영웅 벤저민 프랭클린은 “럼주를 활용하면 야만인들을 박멸해 개척자들에게 땅을 주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럼주는 이미 서부 연안의 여러 인디언 부족을 모조리 절멸시켰다”고 자서전에 썼다.

보스턴 사람들이 차 밀수를 단속하는 세금 징수원을 고문하는 장면. 뜨거운 타르를 붓고 깃털을 붙인 뒤 강제로 차를 마시게 했다. 브라운대 존 카터 브라운도서관 소장. 글항아리출판사 제공.
보스턴 사람들이 차 밀수를 단속하는 세금 징수원을 고문하는 장면. 뜨거운 타르를 붓고 깃털을 붙인 뒤 강제로 차를 마시게 했다. 브라운대 존 카터 브라운도서관 소장. 글항아리출판사 제공.

시대가 변하면서 밀수 품목과 양상도 달라졌다. 건국 초기 미국은 당시 영국이 주도하며 세계 경제를 좌우하던 섬유산업 부문에서 방적기, 소면기 등 관련 기술과 기술자를 들여와 경제를 일으켰다. 섬유산업이 커지자 면화 생산 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밀수했다. 노예제에 반대한 링컨조차 면화를 밀수해 군수품과 바꾸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경제 성장으로 소비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밀수도 동반 성장했다. 19세기 미국은 사치품, 음란물, 술 등의 밀수와 책 무단 복제가 횡행했다. 2차대전 후 본격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열린 뒤로는 마약, 총기, 담배, 문화재, 멸종위기 동물, 심지어 어린 아기와 장기 매매까지 밀수꾼의 손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인터넷 발달에 따른 온라인 저작권 도용과 불법 금융거래는 21세기형 밀수다.

저자는 지금도 극히 사소한 생필품 하나까지 밀수가 가장 성행하는 나라, 국익의 이름으로 외국을 상대로 벌어지는 불법무역을 눈감아주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미국이 오늘날 정직한 경제를 부르짖는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방대한 자료와 일화를 제시하며 써 내려간 미국사의 어두운 이면이 흥미롭거니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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