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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이 땅의 기상예보

입력
2015.04.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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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기상예보를 본다. 간절기는 옷 입기가 참 어중간하다. 기상 캐스터가 말한다. 4월인데도 일교차가 크다고. 봄 치마를 입은 캐스터는 전국의 구름을 가리키며 예년에 비해 많이 차가운 4월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연히 한 자리에서 기상예보 전문가를 만났다. 그는 뉴스에 나갈 기상정보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담당관으로 오래 근무한 분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이기만 하면 기상 전문가들은 앞으로 매년 4월은 이렇게 추울 것이라고 분석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이 아직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기상 작업을 하시는 분의 예측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냐고 했다. 그는 이 땅의 기상에 대해선 침묵했다. 40여년간 기상 담당관으로 일하며 몇 번의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지켜본 통계에 따르면 날씨를 전하는 일은 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고, 잘해야 본전이라고 한다. 국민이 기억할만한 사건마다 자신이 내보낸 그날의 기상뉴스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 비례에 대해 믿냐고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의 수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보지만 가장 신뢰하지 않는 뉴스 중에 하나가 기상뉴스라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경기가 어려울수록, 사건사고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기상뉴스를 열심히 본다고 한다. 이 땅의 날씨가 사람들의 속내와 비례한다고 믿는 우리 민족의 믿음일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뉴스는 모두 당대의 기상예보에 다름 아닐 것이므로.

세월호가 가라 앉은 지 일 주년이 되었다. 배는 여전히 바다 속에 있다. 몸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한 아이들 몇은 여전히 차가운 물 속에서 눈을 뜨고 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야간비행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활주로에 나가 발을 구르며 우편비행기를 타고 떠난 파비앙이 악천후를 뚫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마지막 숨은 물 속에 가라앉아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그 아이들의 숨냄새가 그리웠다.

‘기울기를 어떻게 구하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보냈던 소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력으로 건너갔다. 한 소설가는 그 이야기를 아프게 자신의 소설로 그려내었다. 소설을 읽은 후 다섯 살 된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물 속에서 떠오른 새들의 이름은 차마 내 시가 되지 못했다.

오래 전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요즘은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또 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누군가에게는 말 없이 눈물만 나는 삶의 질문이 되어버리는 일이 요즘엔 너무 쉽게 일어난다. 참혹한 기상을 거짓으로 전해야만 하는 우편비행기들은 계속 뜨고 있다. 악천후 속에서 진실을 가진 비행사들의 조종간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우리는 예감한다.

기상이 좋지 못하다. 예전에 기상을 관측하고 기우제를 지내던 벼슬이 있었다. 그들은 천문관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하늘과 땅의 운기학을 공부했고 왕과 백성들에게 신뢰받았다. 천문관은 박봉이었지만 정직했고 일생 자신들의 공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민심의 가슴에 하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4월은 꽃이 피어요. 아빠 그런데 우리는 아직 추워요. 왜 그런지 아세요?” “왜지?” “아직 아이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래요.” 어린아이들에게도 유행어가 된 이 기상정보를 외면하는 그들의 세상이 가엾다. 12명 배심원의 투표에 의해 내일의 날씨가 결정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물 속의 아이들을 기다리는 일이 삶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놓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왕국이다.

내일은 새떼들이 기상청에 몰려가 항로를 알려줄 것이다. 우리들은 당신들의 나라를 지나갈 때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간다고. 우리들의 일은 물대포에 맞아 떨어진 새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우는 일 뿐이다. 그것이 이승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슬픔을 외면하면 세상은 저승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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