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그날, 왠지 창천에 별이 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건은 기별만 접한 상태에서 삶과 죽음과 인간과 우주에 대한, 대낮에 별 잡는 듯한 얘기를 나누었었다. 저녁엔 술을 마셨고, 사건의 끔찍함을 그제야 알았다. TV와 인터넷이 요동쳤고,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는 그 어떤 변설보다 정확했고 분명했다. 정확한 분노와 분명한 슬픔 앞에서도 그러나 많은 게 불분명하고 부정확했다. 낭분(狼奮) 없이 개시되고 확산하는 참혹의 연쇄, 그럴수록 굳게 닫히는 비밀과 음모의 문.
일 년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사계절이 지나고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앞의 요동들은 울음과 분노를 되새김질하며 나날이 여의어 가고, 그럴수록 물 속 깊이 암장된 죽음의 낯빛들은 더더욱 투철해져 가고, 제철 맞은 꽃들의 난분분(亂紛紛)마저 여전히 갈무리되지 않는 추념의 방점인 양 요사스럽고 괴이하다.
일 년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그날하고도 일주일 지났을 즈음, 생중계되는 죽음의 파동에 휩싸여 사촌조카가 제 발로 물속에 들어갔다. 먼 슬픔이나 가까운 슬픔이나 그저 똑같은 얼굴, 똑같은 울분으로 물 속 길을 열고 있었다. 덩달아 들어가고 싶었다. 비밀의 문은 노크만 할 게 아니다, 깨부숴야 한다, 는 마음만 안고 그렇게, 그날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지났다고 말하는 게 죄스러워서 이 글은 쓰나마나다. 그래도 안 쓸 수 없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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