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 시절 화롯불에 양손 덥석
엄지 제외 8손가락 오그라들어
외환위기 때 수십억 부도ㆍ잠수
숙취해소 건강기능성 제품으로 히트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습니다.” 양손이 쪼그라든 장애와 숱한 좌절을 극복하고 일어선 케어칸㈜ 우상하(52ㆍ사진) 대표. 그는 장애 극복의 대명사가 된 헬렌 켈러처럼 수많은 장애인들이 닮고 싶어할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씨의 케어칸은 숙취해소에 좋은 헛개나무 추출물을 원료로 한 기능성식품을 생산ㆍ판매하는 업체다. 특히 2012년 첫 출시된 케어칸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개별인정형 헛개나무 추출성분을 사용, 기능성 음료로 등록된 유일한 제품으로 급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과 경기, 안동의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등에 사무소와 공장, 연구실 등을 두고 건강기능성 음료와 정제 등을 생산해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현재 우씨는 케어칸을 중심으로 모두 5개사 170여 명의 임직원을 이끌고 있다.
지금은 성공한 CEO이지만 그도 사업가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법한 실패를 맛보았다. 특히 그는 어릴 적 화상으로 두 손이 불편한 장애인인 탓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의 성공이 돋보이는 이유다.
우씨의 장애는 갓 첫돌이 지났을 무렵 찾아왔다. 당시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났다. 더욱이 양반고을 안동에선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내리 딸만 셋을 낳은 뒤 태어난 아들이었다.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집안 어른들은 그에게 손도 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늦은 가을 어느 날. 증조부 방에서 자다 깨어난 그는 방안을 기어 다니다 화롯불에 두 손을 짚고 말았다. 어머니는 개울가에 빨래하러, 증조부는 손님 술상을 차리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8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우씨는 “요즘 같으면 약간의 흉터만 남기고 나았을지 모르지만 당시 국내 의술 수준이 낮았고 안동에는 화상전문은커녕 변변한 외과병원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집안 어른들은 그의 출생신고를 3년이나 늦췄다. 1, 2년 정도 신고가 늦은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3년은 드물었다. 그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입학도 늦었고, 온 집안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재활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며 “중학교 때는 거수경례를 할 수 없었고, 남들이 보는 게 부끄러워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보니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때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 그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지만 명문대를 졸업하고 여성인권운동가로 이름을 떨친 헬렌켄러를 생각했다. 책 읽기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교내외 백일장에서 잇따라 수상했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나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세상의 벽은 높았다. 최종 신체검사에서 번번히 탈락했다. 장애인의무고용법률도 없던 시절이라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광고회사 창업, 길지 않은 직장생활 끝에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퇴사했다. 유망해 보이는 건강관련 일을 시작해 잘 되는 듯 했는데 IMF 파고를 넘지 못했다. 수십억원의 부도가 나면서 빚쟁이들이 집으로 쳐들어 왔다. “도망치듯 출국해 방황의 나날을 보내다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장애인들의 롤 모델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귀국해 재기를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 한 국내 제약회사를 찾아가 성장발육제품 상품화를 제안, 대박을 터뜨렸다. 주문자부착상표(OEM)방식으로 납품하면서 대부분의 빚을 갚았다. 우씨는 “새 사업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빚을 갚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었다”며 “3억원이라는 거금을 차용증도 쓰지 않고 빌려준 친구가 없었다면 오늘의 케어칸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간의 준비 끝에 우선 유명 유제품 생산업체에 헛개나무 추출물 원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어 2012년에는 자체 상표를 단 숙취해소 기능성건강식품인 케어칸을 출시, 히트상품 반열에 올렸다.
비즈니스를 위해 배운 골프는 보기플레이 수준이다. 양손이 성치 않은 점을 고려하면 굉장한 실력이다.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하고 뛰어 넘어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 했다”며 “다른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최고의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권정식기자 kwonjs5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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