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12일 일정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했다. 출국에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에서 예정에 없는 긴급 단독회동을 가져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지만 이완구 총리 거취 등에 대한 중대조치는 없었다. 회동 후 김 대표는“당 내외에서 분출되는 여러 의견을 가감 없이 말씀 드렸다”면서 박 대통령은 그에 대해 “잘 알겠다,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가 대통령에게 전달한 당 내외의 여러 의견에는 사실상 국정수행이 어렵게 된 이 총리의 해임 또는 직무정지 등의 조치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즉답을 피하고 결정을 귀국 이후로 미뤘다. 안이한 상황인식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1주기 당일 출국일정을 잡은 것도 그렇지만 사실상 내각을 통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 총리를 그대로 두고 출국한 것은 뻔히 내다보이는 국정공백을 방치하는 것으로 무책임한 처사다.
이 총리는 이날도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고 의욕을 보이며 야당과 여권 일각에서 요구하는 사퇴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경기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의 항의로 조문조차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총리로서의 역할을 사실상 수행할 수 없다는 게 현장에서 입증된 셈이다. 야당에서는 이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상황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김 대표와의 회동에서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떠한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특검 도입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가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선 지금 이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불법 선거자금 3000만원 수수 의혹으로 당장이라도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아닌가.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수개월이 걸린다. 현재 돌아가는 형세로는 결국 특검까지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사실상 식물총리나 다름 없는 이완구 총리 체제를 언제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총리 다음의 대통령 권한대행 순위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19일까지 해외체류 중이고, 이병기 청와대비서실장 역시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운신이 어려운 상황이다. 일찍이 없었던 국정공백상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 박 대통령 출국시간과 출국 공항이 수시로 바뀌는 등 동선에 큰 혼선이 빚어진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 문제다. 일국의 대통령 일정이 이렇게 우왕좌왕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제적 대응을 못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밀려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다가 벌어진 소동이다. 위기의 조짐이 한둘이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