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외로 출국한 내국인은 1,600만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즉 대한민국 사람 3명 중 1명이 외국에 다녀왔다는 의미인데요, 그야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 휴가나 배낭여행은 물론 업무로도 이웃집 가듯 해외에 가는 시대가 찾아왔죠.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라 15일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로 다음날인 16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업무수행을 위해 각각 미국과 중남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출국 때문에 국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15일은 국회에서 경제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이 열리는 날이고,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인 걸까요. 최 부총리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을 이유로 대정부질문 불출석 의사를 밝혔지만, 야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최 부총리의 출석은 필수라며 출국을 만류해왔습니다. 특히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출국 바로 전날까지 통화를 하며 설득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끝내 출국의사를 꺾지 않는 최 부총리 때문에 한때 새정치연합 의원들 사이에서는 대정부질문을 보이콧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우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에 정의화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하기까지 이르렀죠.
평소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는 평가를 받는 우 원내대표는 “국회가 국민의 이름으로 국무위원을 부르는데 (불출석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일”이라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강한 목소리로 흥분하는 우 원내대표를 보고 기자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곁에 있던 안규백 새정치연합 수석원내부대표도 “나라가 엄중한 상황이라 절대 가면 안 된다,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묵살했다”고 거들었습니다. 야당의원들의 항의 방문에 정 의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동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달래기에 여념 없었습니다. 실제로 정 의장도 출국 직전까지 최 부총리에게 “일단 국회에 출석을 하고 밤 늦게 (미국으로) 떠나는 게 맞다”며 끝까지 말렸다고 합니다.
사태는 정 의장이 유감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최 부총리를 다시 국회에 불러 오직 최 부총리 만을 상대로 긴급현안 질의를 하기로 결정하며 일단락 됐지만, 출국의 적절성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입니다. 최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막대한 손실을 지고 되팔게 된 캐나다 하베스트 날 인수 사업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대정부질문에서도 해외 자원외교에 대해 최 부총리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 강하게 몰아붙일 계획이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책을 집중적으로 따져 묻고, 그 총책임자인 최 부총리의 이른바 ‘초이 노믹스’의 문제점을 파고들 예정이었습니다.
때문에 야당은 최 부총리가 질의를 피해 해외로 ‘도망’을 갔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 의장이 오전에 대정부질의에 참석하고 오후나 밤에 출국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까지 설득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떠난 것”이라며 “당장 매 맞기 부담스러워 서둘러 출국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최 부총리 측은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대정부질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이미 최 부총리의 불출석은 4월 9일 국회의장에게 통보했고 야당 지도부에게 여러 차례 양해를 전달했다”며 “오늘 출국은 처음으로 미주개발은행(IDB) 의장국으로서 주재하는 회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옹호했습니다.
과연 가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아니면 하필 장날을 골라 출국하는 건지 진실 여부는 당사자만이 알 일입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도 16일 오후 해외 순방을 위해 한국을 떠납니다. 대통령도 없고, 대통령 대신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이완구 총리는 ‘식물 총리’라 불리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시점에 총리를 대신할 ‘넘버 3’ 부총리마저 국내를 떠나게 됐습니다.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 부총리가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됐네요. 야당 의원들은 최 부총리를 상대로 한 ‘단독 대정부 질의’를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최 부총리도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네요.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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