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표방하면서 '중립'입장
경제섹션 등 정보 제공 부족
모바일 '반칙없는 뉴스' 호평

한국일보 독자의 알권리를 높이고 초상권 등 기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근 출범한 독자권익위원회 첫 회의가 15일 열렸다. 권광중 위원장을 비롯한 10명의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한 달 간 한국일보 지면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를 보완해 향후 한국일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회의에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인 권 위원장을 비롯해 최창렬 용인대 교수, 지평님 도서출판 황소자리 대표,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남두 스타마크에이전시 사업부장, 서형욱 축구해설가, 정희수 주부, 학생으로 변은샘(가톨릭대) 윤여진(경희대)씨와 사내에서 이계성 수석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집유기간 출국 ‘도피’ 표현은 잘못

권광중=‘독자의 권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소박하게 생각하면 독자의 알 권리와 독자들의 성명권 인격권 초상권 등 개별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한국일보가 독자의 권익을 신장시키고 또는 침해하지 않도록 정보를 제공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신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가 제시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이 독자권익위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일자 한국일보의 진로회장 중국서 사망 기사에서 집행유예기간 중 외국으로 간 것을 도피라고 썼다. 집행유예기간에는 얼마든지 출국을 할 수 있으므로 이를 도피라고 단정할 수 없다. 찾아보니 연합뉴스에서 도피라는 표현을 먼저 썼고 한국일보뿐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이 그렇게 썼더라.

서형욱=스포츠면에서 예전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기존매체들이 슈퍼볼이나 마스터스 등이 있으면 한 면을 할애한다. 그런데 사실 국내에서 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골프도 비슷한 경우다. 독자들 중 골프를 챙겨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난 14일자 한국일보 스포츠면은 마스터스에 한 면을 할애했다. 스포츠는 웬만큼 두루 아는 데도 제목으로 뽑은 ‘스피스’가 누군지 모르겠더라.
물론 정보성으로 알려주는 걸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하다. 이 이름만으로 독자들이 알기가 어렵고 저명하지 않은 인사인데 헤드라인으로 뽑아 의아했다. 사실 외신기사가 쓰기 제일 쉽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되고 관심 있는 분야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언론에서 크게 다루면 자연스레 우리도 따라서 크게 다루는 경향은 문제다.
지평님=청년실업문제를 지난 3월 여러 날 걸쳐 다뤘다. 이걸 보며 한국일보는 관성적으로 신문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사로 청년실업이 해결될까, 구직자에 어떤 새로움을 줄까. 근본적인 접근 없는 이런 식의 기사는 불쾌한 동정이나 싸구려 위안, 무책임한 희망고문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우리 시대의 밑그림, 어젠다를 설정해서 긴 호흡으로 펼쳐내는 기획을 위해서 별도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령 청년실업 문제의 경우 더 파고들어 ‘경제 생태계 다시 가꾸기’등의 논의로 확대해 보면 어떨까. 대기업이 탄생하는 풍경부터 시작해 하청과 아웃소싱 형태로 진행되는 기업의 꼬리자르기 현장, 노키아 몰락 이후 핀란드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천 개의 노키아 만들기’가 현실화되는 모습, 북유럽 강소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주민 자치사업체, 국내에서 발아하는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공동체들까지.
단발 기사가 아니라 분기별로 혹은 일년 내내 집중적으로 다루든지 하면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본다. 신문답고 한국일보다운 격조의 기사를 생산해서 닷컴에 올리는 것이 종이와 인터넷모두 독자를 늘릴 수 있는 길이다.
‘중도’와 ‘중립’ 혼동하지 말아야

변은샘=한국일보의 위축은 ‘중도’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 아닌가 한다. 문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자신을 ‘중도’라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사안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들 객관적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주관을 섞어 문제를 바라본다.
이 때문에 진보, 보수가 아닌 뒤섞인 의견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이 불편해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불편한 글들은 대체로 외면하려 들고 그러다 보니 ‘중도’는 불편하고, ‘중도’를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보기 불편한 신문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일보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실상은 ‘중립’이다. ‘중도’란 최소한의 원칙을 가지고 문제의 속성에 따라서 다르게 고민하고 생각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호한 표현들과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제목, 팩트 나열을 볼 때 한국일보는 ‘중립’에 가깝다. 매번 최대한 객관적으로 최소한의 원칙을 따지고 판단하는 일은 무척 번거롭고 ‘중도’를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생략해서는 안 되는 과정이지만 실제 신문기사는 방향성 없이 중간만 가자는 것으로 읽혔다. 기사제목, 내용에서 좀 더 확실한 방향성, 입장 표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희수=한국일보는 50대 이상 남성이 좋아할 신문 같다. 광고나 세일 정보 등이 없어서 주부로서 아쉽다. 기사가 무겁다. 신뢰는 가지만 그 때문에 모든 연령의 독자를 아우르기는 어려운 느낌이 든다. 길게 봐 젊은이들이 오래 볼 신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김남두=세상은 급박한데 한국일보를 보면 세상 참 편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가 한 템포 늦은 듯한 느낌이다. 이명박 자원비리 사건 등 사안에 비해 너무 쉽게 다루는 경향도 있다. 한국일보는 정치에 편중되어있고 경제쪽은 섹션도 별로 없을 뿐더러 미비하고 부족한 느낌이다. 세월호 기사의 경우 객관적으로 내다봐서 괜찮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사자들은 비참하고 힘든데 감정 없이 겉에서 아우르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면 과연 그들 처지에서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영길=‘중도’는 매일 선택과 판단이 힘들 것 같다. 두 가지 위험이 있다. 스탠스가 불투명하다는 것과 대안제시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일보에서는 특별한 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새 독자를 끌어들이기 힘들다. 정체성을 어떻게 잡느냐는 이슈를 어떻게 잡느냐, 편집을 어떻게 할 것이냐로 연결된다. 한국일보만이 다룰 수 있는 이슈를 찾아야 한다. 양비론 보다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 등을 취재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편집에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그래픽을 많이 써야 젊은 층에 호소할 수 있다.

지평님=포지셔닝이 어정쩡하다. 읽으면서 꼭 한국일보를 선택해야 하는 매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럴까. 한국일보에는 신문의 가장 큰 소구 지점인 새로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창렬=‘중도’라는 한국일보의 방향은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이분화된 여론 구도 속에서 한국일보가 나아갈 길은 험난하다.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하지만 독자들에게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최근 몇몇 신문이 특종 보도로 성가를 올리고 있다. 신문이 진가를 높이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한국일보도 정치, 사회 이슈를 주도해 가야 차이가 생긴다. 활자의 선명도라든지 가독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에 확 띄는 편집이나 기획 기사를 강화했으면 좋겠다. 1면 목차 정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15일자 1면 제목의 경우도 너무 평범ㆍ평이하다. 이건 중도의 문제가 아니다. 편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상을 줄 수 있는 강한 편집이 필요하다.
닷컴 ‘반칙 없는 뉴스’ 호소력 있어
정희수=한국일보닷컴의 ‘반칙 없는 뉴스’라는 문구가 좋다. 밋밋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공정하다는 인상을 준다.
서형욱=한국일보는 모바일에 다른 매체들과 비교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클린 정책이 그렇다. 보통 언론사 홈페이지 들어가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보기 싫은 광고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의 세월호 기사는 담담하면서 한 발 떨어져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해줘 좋았다. 진심을 담아 기획하고 취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여진=세월호 관련해서는 1주기를 앞두고 여러 매체가 기획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일보는 아픔 치유 규명 개조 등으로 나눴는데 유가족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잘 다뤘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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