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갤러리에서 한 작가의 작품 앞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림 속에는 빛 바랜 시멘트 담벼락 앞의 한 여고생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햇볕이 환히 내리쬐는 한낮이지만, 우거진 나뭇잎도 생기를 잃었고, 아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힘없이 늘어진 팔, 왼쪽 손목에는 긴 머리를 묶을 때 쓰는 머리 고무줄이 걸려있었다.
무기력함이 느껴지는 그림에는 정적이 깊이 감돌았다. 시끄럽기만 한 세상의 소리를 닫는 듯, 침묵하는 화면에서 아이의 커다란 눈만이 그렁그렁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순수했던 기억, 믿었던 진리, 이상의 시간을 영원히 붙들고 싶은 애절함과 동시에 꿈이 부서진 현실 앞에 허망해진 아이의 눈이 우는 것처럼 보여서, 바라보는 가슴이 울컥해졌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다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브레히트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시장 벽면 한 귀퉁이에 노란 리본과 함께 붙어 있는 글귀였다. 작가는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며 헌정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왜 살아남는 자는 슬퍼해야 할까. 무기력을 겪어야 하는 남은 자들의 상처이다. 불안해 보이는 화면은 진리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물질이 자리하면서 생기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다. 무책임한 사회윤리의식의 결여가 마음을 아프게 상기시킨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박재동 화백은 숨진 단원고 학생들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엄숙한 영정사진이 아니다. 하나같이 일상 속의 밝은 모습이다. 아이들의 동영상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웃고 음악을 즐기며 지냈던, 일상적인 사진들을 보고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 옆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며 아이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게 된다.
그림으로 피어난 아이들은 해맑다. 미소 띤 모습을 지켜보려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대나무 숲의 바스락거림을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어떤 아이는 VJ가 되고 싶었고 또 다른 아이는 우주학자가 되고 싶었다. 우리가 그 생명을 지켜 아이들이 살아있었다면, 그 아이들이 이룰 수 있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룰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책임이었다. 우리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박화백은 그림으로나마 고통의 본질에 깊이 들어가 위로했다. 그가 그린 아이들의 밝은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사회에 많은 질문을 하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소통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통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을 나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 의미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희망을 존중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 그것은 이 시대에 화가가, 예술가가 사회의 한 일원으로 소통하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화폭에 꽃으로 가득 채운 컵 하나를 그렸다. “차 한 잔 하세요”의 의미다. 따듯한 차가 담긴 컵은 일상의 소소한 물건이지만 소통을 확장시키는 고마운 존재다. “차 한 잔 하실래요”는 관계의 물꼬를 트는 따뜻한 말 한마디다. 배려와 함께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매개다.
그리고 의자를 그렸다. “앉으세요”의 의미다. 의자를 내미는 일은 상대를 편안하게 그리고 시간적 여유를 담는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지금 세월호 유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상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따듯한 차 한 잔을 가운데 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서로의 무릎을 맞대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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