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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살 오른 봄 멸치, 회·찌개·구이로… 본고장 맛에 흠뻑

입력
2015.04.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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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생산량 60% 차지 어획 월등

크기 7.7㎝ 넘는 대멸이 별미

대변항 거리엔 맛집들 줄줄이

갓 잡은 싱싱한 멸치 요리 '군침'

올해로 19년째 이어온 기장축제

이달 24~26일 열려 볼거리도 풍성

봄바람을 타고 멸치 떼가 올라오자 부산 기장군의 대변항이 분주해졌다. 멸치잡이 어선의 선원들이 대변항 부두에서 장단에 맞춰 그물을 털고 있다.
봄바람을 타고 멸치 떼가 올라오자 부산 기장군의 대변항이 분주해졌다. 멸치잡이 어선의 선원들이 대변항 부두에서 장단에 맞춰 그물을 털고 있다.

“어기나 디야, 어기나 차야”

어부들의 장단에 맞춰 위로 치솟던 그물이 정점에서 퉁 튕겨질 때 수백 마리 멸치가 수거 망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바다 향 가득한 멸치를 찾는 사람들로 대변항이 분주해졌다.

멸치의 경우 봄, 가을에 산란을 하는데 이때가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올라 기름진 상태라서 맛이 더 풍부하다. 이 시기에 유자망협회 어선들은 멸치를 잡기 시작한다. 대변항에는 한 때 멸치잡이 배가 30척이 넘었으나 현재는 9척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간 어획량은 4,000~5,000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만큼 수확량이 월등하다. 특히 봄 멸치의 경우 기장 멸치를 최고로 친다. 성어기인 3~5월에 찾아오는 손님만 연간 40만명에 달한다.

기장 멸치는 크기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대멸은 7.7㎝ 이상, 중멸은 4.6~7.6㎝, 소멸은 3.1~4.5㎝, 자멸은 1.6~3㎝, 세멸은 1.5㎝ 이하를 말한다. 그 중에 큰 놈은 길이가 10cm가 넘어 대멸 중의 대멸에 속한다. 특히 대멸은 살이 통통하고 연하며 지방질이 풍부해 생선 대접을 받는다.

기장 앞바다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수역으로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물살이 세 멸치의 활동력이 높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겨울철 남쪽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자란 멸치가 알을 낳아 가면서 북상하다 대변항 연근해에서 잡혀 영양도 좋고 맛도 일품”이라고 분석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멸치 요리로는 싱싱한 회무침,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이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멸치 요리로는 싱싱한 회무침,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이 있다.

봄 기장 멸치는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살리는 보약과 같다. 미나리와 쑥갓, 양배추, 쪽파 등 제철 야채에다 새콤달콤한 고추장에 버무린 멸치회 앞에선 그 누구라도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우거지에 대파, 팽이버섯, 들깻가루 된장을 넣어 끓인 멸치찌개도 별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멸치 요리로는 싱싱한 회무침,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이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멸치 요리로는 싱싱한 회무침,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이 있다.

대변항 뒤편을 따라 길게 형성된 거리엔 멸치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맞은 편에는 싱싱한 멸치를 회나 구이로 맛볼 수 있는 횟집들과 액젓을 판매하는 집들이 즐비하다.

이 거리를 지나가면 대멸치를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식당마다 출입문 앞에 숯불이나 연탄을 피운 채 멸치를 구워댄다. 포구를 찾은 미식가들의 발길을 붙잡는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구이용 멸치는 갓 잡은 멸치 중에서 가장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 인물 좋은 놈들로 선별된다. 적당하게 구워진 멸치살을 한 입 뜯으면 고소한 맛과 함께 뜨거운 불내음이 훅 배어 나온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멸치 요리로는 싱싱한 회무침,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이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멸치 요리로는 싱싱한 회무침,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이 있다.

항에서 갓 잡은 싱싱한 멸치를 깨끗이 뼈를 발라내 멸치살만 분리해 판매하는 곳들도 많다. 구입한 멸치 살을 일명 ‘초장집’이라고 불리는 횟집에 가지고 가 약간의 자릿값을 내면 초장의 새콤한 양념이 더해진 부드러운 멸치회 맛을 느낄 수 있다.

커다란 대형 통에서 숙성되는 멸치액젓은 판매하는 집들마다 다른 맛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래서 크고 작은 멸치 액젓의 용기에는 판매하는 집이나 간판의 이름이 상표로 붙어있다. 멸치와 소금만으로 버무렸다고 하지만 그 비율과 손맛이 다르기 때문. 1년 이상 숙성된 멸치 액젓은 찌꺼기와 불순물을 걸러내 맑은 액젓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기장 멸치는 맛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풍부하다. 흔히 멸치 하면 떠오르는 칼슘뿐 아니라 마그네슘과 불포화지방산 등도 많이 들어있다. 마른 멸치 한 줌이면 마그네슘 하루 권장섭취량을 다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영양 만점, 맛도 만점인 멸치의 계절을 맞아 기장군은‘통통 튀는 생생 멸치’라는 슬로건으로 제19회 기장멸치축제를 오는 24∼26일 대변항에서 개최한다.

기장멸치축제는 1996년 멸치라는 식재료를 주제로 한 전국 최초의 축제로, 국민들의 정서 속에 반찬류의 일종으로만 생각하던 멸치를 별미 생선으로 재탄생 시켰을 뿐 아니라, 19년 동안 축제가 이어지면서 대변항 일원을 멸치관련 수산산업 중심기지로 변모시켰다. 지역산업의 대내외 홍보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해 왔다.

이번 축제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소방정 분수쇼, 어선 해상 퍼레이드, 풍물패 퍼레이드, 길놀이 등이 있다. 맨손활어잡기와 멸치 기네스, 마이크를 잡아라 등 재미있고 특별한 체험 행사도 준비돼 있다. 축제기간 동안 점심시간(낮 12시~오후 1시)에는 멸치회를 무료로 맛볼 수 있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초대 군수 때 시작한 기장멸치축제가 전국 먹거리 축제의 효시가 됐다”며 “올해 축제도 볼거리, 특별한 체험, 건강이벤트 등 풍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행복감은 물론 일품 기장멸치의 참맛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장의 또 다른 별미로는 짚불 곰장어를 빼놓을 수 없다. 보통 곰장어는 양념을 발라 구워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기장 쪽에서는 짚불을 이용해 별 다른 양념 없이 구워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이 짚불 곰장어는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들어 부산의 명물로 손꼽힌다.

기장 짚불 곰장어를 탄생시킨 것은 극심한 흉년이었다고 한다. 곰장어는 그 생김새가 뱀처럼 생긴데다 몸의 양 옆에 끈끈한 진액을 뿜어 부자나 권세 있는 사람들은 아예 먹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 말엽 극심한 흉년으로 보릿고개를 넘기가 어려워지자 굶주린 백성들이 마지못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식량 대용으로 먹기 시작했다. 들이나 산에서 농사를 짓다가 배가 고프면 주위에 널려 있는 볏짚에 불을 피워 곰장어를 던져 넣었더니 껍질은 시커멓게 탔지만 속은 잘 익어 껍질을 벗기면 속살 먹기가 좋았다. 보릿고개 때 곰장어 서너마리만 먹으면 며칠씩 굶어도 견딜만 했다고 한다. 6ㆍ25 때 부산으로 피란 온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 준 것도 짚불 곰장어라고 한다.

기장 멸치와 짚불 곰장어로 배를 채웠다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의 하나로 꼽히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사찰 해동 용궁사를 가보자. 너른 바다를 절집 마당으로 삼은 사찰이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지만 절묘한 풍경으로 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해동용궁사측에서 말하는 사찰의 내력으로는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이곳에 보문사라는 절을 창건했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된 것을 1930년 통도사의 운강화상이 중창했고 1974년 정암스님이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금은 번잡스러운 절 입구를 지나 108돌계단을 내려가면 마치 용궁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바다를 마주하고 자리 잡은 법당을 만나게 된다. 너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절집은 바다와 너무 가까워 태풍이 일기라도 하면 성난 파도가 대웅전 지붕 위로 넘어갈 것만 같다.

부산=글ㆍ사진 전혜원기자 iamjh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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