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바람과 모래였다. 바람이 일으킨 모래가 먼지가 되어 스크린에 흩뿌려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입안에 모래가 씹혔다. 카메라는 1950년대 중국 고비사막에 세워진 정치범 수용소의 풍경을 묵묵히 바라본다. 우익반동으로 몰린 인사들이 노동하다가 죽고 밥을 못 먹어서 죽는 장면 등이 상영시간 108분을 채웠다. 사람들은 시체를 모래구덩이에 묻다가도 죽었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비명횡사하기도 했다. 물이나 다름 없는 죽을 먹은 한 사내가 그 죽보다 더 묽은 토사물을 토해냈을 때 굶주린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하는 장면에선 눈을 감고 싶었다.
홍콩 프랑스 합작영화 ‘바람과 모래’(2010)는 이념을 내세워 숱한 사람들을 사지에 몰았던 중국 공산정권의 과거 악행을 고발한다. 중국 감독 왕빙은 바람에 휩쓸리고 모래에 묻힌 수많은 무명인의 죽음을 발굴해 중국 현대사의 치부를 복원해낸다. 왕 감독의 용기가 있었기에 과거는 현재가 되고 역사의 상처는 조금이나마 아문다.
유대계 프랑스 감독 클로드 란즈만의 다큐멘터리 ‘쇼아’(1985)는 관객에게 더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과 나치 장교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556분 동안 들려주며 20세기 최악의 비극을 다면으로 살핀다. 영상은 빈약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건조하다. 지루함으로 몸을 비틀기 마련이나 어느 순간 소름이 몸을 감싼다. 대량 학살이 준비되는 과정과 실행되는 모습이 뇌리에 떠오르며 몸은 얼어붙는다. 흥미보다는 역사의 진실을 좇는 뚝심어린 연출로 나치의 죄악은 인류의 고뇌가 된다.
란즈만 감독이 2013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기 전 눈물을 몰래 훔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돈과는 무관했던, 고단한 영화작업을 늦게나마 인정 받았다는 기쁨이 노 대가의 마음을 흔들었으리라.
다시 ‘오늘’이 됐다. 만용이라 할 용기로 과거를 직시한 영화들을 되새기며 의문을 품는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개봉했으나 아직 카메라는 1년 전 오늘의 악몽을 제대로 들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 7위 규모의 영화시장을 지녔고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각광 받은 유명 감독이 여럿 있다는 자부가 공허하다.
시간이 더 흐른 뒤 한국영화는 지난해 비극의 순간을 어떻게 기록해 남길 것인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박스’(1989)가 답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 유명 변호사 앤(제시카 랭)은 자신의 입신을 도운 아버지를 어렵게 고발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국 헝가리에서 저질렀던 만행을 감춘 채 미국에서 살아가던 앤의 아버지는 딸에 의해 심판대에 선다.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고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뮤직박스’의 비장함과 엄격함이 필요한지 모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