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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으로 한국 읽기] 일각 드러낸 빙산

입력
2015.04.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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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표적 수사’에 친박(친박근혜) 실세들을 겨냥한 ‘표적 메모’로 대응했다. 하지만 메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리란 게 세간의 짐작이다. 사진은 9일 숨진 성 전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 11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조선일보 제공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표적 수사’에 친박(친박근혜) 실세들을 겨냥한 ‘표적 메모’로 대응했다. 하지만 메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리란 게 세간의 짐작이다. 사진은 9일 숨진 성 전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 11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조선일보 제공

메모는 전부 사실일 공산이 크다. 목숨과 바꾼 폭로가 거짓 하나로 통째 부정될 수 있으니. 짐작건대 일각 드러낸 빙산은 거대하다. 오염은 광범하다. 정치자금 개혁 단초가 마련됐다.

“이번 사건은 시신이 없는 살인 사건과 같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드나들 때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 요란하다가 심증(心證)은 있지만 정작 물증(物證) 인증(人證)이 부족해 기소가 어렵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증거법리를 잘 알기 때문에 성 회장의 메모에 금액이 똑떨어지게 적힌 사람들도 일단 잡아떼는 것 같다. (…)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 씨가 검찰에서 돈을 주었다고 자백한 정치인이 무려 33명에 달했다. 정 회장은 정치를 하지는 않았지만, 성 회장은 정치와 기업을 겸영했으니 돈 준 숫자가 몇 배 더 많을 것이다. (…) 성 회장이 어딘가에 상세한 비밀장부를 남겨놓았을 수도 있다. 태풍에 꼭지가 부실한 사과가 떨어지듯 성완종발(發) 쓰나미는 바닷가의 쓰레기를 휩쓸고 가버릴 것이다. ‘불사조’ 홍준표 경남지사도 정치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 ‘깨끗한 정부’ ‘깨끗한 대통령’을 자임한 박근혜 정부에서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3명이 연루돼 있고 이완구 총리는 ‘걸어다니는 폭탄’이 돼버렸다. MB정부 기획사정이 단박에 박근혜 정부 ‘자해사정’으로 풍향이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고해성사하고,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해 읍참마속(泣斬馬謖)하고, 정치자금 개혁을 단행하는 중대 결단을 내리는 길밖에 없다.”

-‘제2의 정태수’ 성완종發 정치권 쓰나미(동아일보 기명 칼럼ㆍ황호택 논설주간) ☞ 전문 보기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충청도가 고향이었던 성 전 회장은 학연(學緣)이나 지연(地緣)으로는 역대 정권과 연결 고리가 없었다. 그런 성 전 회장이 정치권에 꾸준히 줄을 댈 수 있었던 것은 금연(金緣) 덕분이었을 것이다. 성 전 회장은 그렇게 돈으로 맺은 인연의 기록들을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을 것이라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다. 정ㆍ관계 로비 스캔들에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 기록은 ‘성완종 리스트’다. 성 전 회장이 쪽지에 남긴 56자(字)짜리 ‘성완종 메모’는 그중 일부 발췌본에 해당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을 ‘표적 수사’ 했다고 여긴 성 전 회장은 ‘성완종 리스트’에서 추려낸 ‘표적 메모’로 맞대응했다. 성 전 회장 최후의 반격은 박근혜 정부의 중심부를 정확히 강타하며 초토화했다. 이제 사람들의 궁금증은 ‘성완종 메모’의 원장(元帳) 격인 ‘성완종 리스트’마저 공개될 것인지 여부다. 성완종 메모에서 피해를 입지 않고 비켜간 다른 정파(政派)들이 묘한 침묵 속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도 그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성완종 ‘메모’와 ‘리스트’의 차이(조선일보 기명 칼럼ㆍ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 전문 보기

주류(친박근혜계 실세)를 겨냥해 비주류(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가 가한 최후 일격의 유탄을 비주류(홍준표 경남지사)가 맞았고 맨 먼저 정치 생명을 위협 당하고 있단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진은 14일 경남도청에서 취재진 확인 질문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홍 지사. 뉴시스
주류(친박근혜계 실세)를 겨냥해 비주류(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가 가한 최후 일격의 유탄을 비주류(홍준표 경남지사)가 맞았고 맨 먼저 정치 생명을 위협 당하고 있단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진은 14일 경남도청에서 취재진 확인 질문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홍 지사. 뉴시스

아성은 얼마나 견고한가. 비주류 말로는 허망하기 일쑤다. 배신은 흔하고 소외는 영원하다.

“홍준표는 스스로를 비주류로 칭해왔다. 가난했던 학창시절, 괘씸죄에 걸려 한직으로 전전하던 검사 시절에 이어 정계에 와서도 여전히 비주류로 맴돌았다. (…) 그러다 2011년 여당인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주류로 편입됐다. “세상에서 주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 나는 평생 비주류를 해 봐서 잘 안다.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주류로 살고 싶다.”자서전에서 희망한 대로 현역 4선 의원에 경남지사인 그는 완벽한 주류로 변신했다. (…) 저격수 홍준표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 무엇보다 단돈 1만4,000원을 들고 서울역에 내려 정치인으로 성공한 홍준표가 그보다 적은 1,100원을 들고 상경해 자수성가한 성 전 회장에게 저격 당했다는 점이 얄궂다. 홍준표는 서민들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누누이 밝혀왔다. 그러나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금품수수 의혹까지 받는 그를 지지하는 서민이 있을 리 없다.”

-저격수 홍준표의 추락(한국일보 ‘지평선’ㆍ이충재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성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입신한 수완가였다. (…) 그러나 그는 젊어서부터 정치권 주변을 맴돌았다. (…) 그는 지난 20여년 모든 정권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 DJ 정권 시절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에 들어갔다. 이때 선거자금 16억원을 지원한 게 문제가 돼 2년 뒤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행담도 개발 비리로 또 유죄 선고를 받았다가 두 번 모두 사면받았다. (…) 2012년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공천을 받는 데 실패하자 충청권 정당인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아 고향에서 기어코 당선됐다. 그러나 이마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됐다. (…) 그가 정치를 기웃거리지 않았다면 미약한 학력과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장학사업을 했던 기업인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배신감에 떨며 목숨을 끊었다. 그제 그가 묻힌 무덤에 자서전과 함께 국회의원 금배지가 묻혔다. 어제 경남기업도 상장이 폐지됐다. 그가 그렇게 집요하게 추구했던 것이 결국 모든 것을 앗아간 질곡이었다.”

-무덤에 묻힌 금배지(조선일보 ‘萬物相’ㆍ신정록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오도된 집단기억 덕에 집권한 현 정권이 기어코 지우려는 그 기억이야말로 정작 우리가 간직해야 할 기억이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선체 인양 및 진상 규명, 희생자 배ㆍ보상 절차 중단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삭발식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도된 집단기억 덕에 집권한 현 정권이 기어코 지우려는 그 기억이야말로 정작 우리가 간직해야 할 기억이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선체 인양 및 진상 규명, 희생자 배ㆍ보상 절차 중단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삭발식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 정권은 미몽의 산물이다. 환멸은 후유증 뒤에 온다. 간직해야 할 집단기억은 따로 있다.

“4월 들어 한국일보에 게재된 외부 칼럼을 살폈더니 ‘세월호’를 주제로 한 칼럼이 적어도 하루에 한두 건이었다. 칼럼 내용 중 ‘세월호’라는 말이 들어간 것까지 포함하면 외부 기고의 거의 절반 정도가 세월호와 연관된 것이었다. (…) 청하지도 않았는데 특정 주제의 칼럼이 쏟아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의미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구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호응하고 있으며, 그래서 ‘세월호’가 한국인의 집단기억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 성평등 세계 순위 최하위권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2012년 대선 결과 역시 이런 집단기억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박정희는 독재를 하고 인권을 짓밟았지만 경제성장을 일궜다는 평가도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중요한 집단기억은 ‘박정희는 우리를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 고프다”는 자식들에게 한 끼 더 챙겨주게 된 강렬한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지도자의 업적으로 받아들여온 게 사실이다. 그런 집단기억이 작동하면서 정권이 재창출됐고 역사에 또 새 페이지가 열린 것이다. (…) 세월호 기억을 간직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이 이 기억을 지우려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 나아갈 때 비로소 한국 역사에는 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김범수 여론독자부장) ☞ 전문 보기

“현실 속의 불황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찬란한 산업화 시대’에 대한 복고주의적 열기가 뜨거워진다. 지금 집권 세력인 강경우파들부터 박정희 신드롬을 대통령 만들기에 활용했다. 국정 경험도 업적도 거의 없는 사람이 ‘박정희 딸’이란 이유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였으니 이 신드롬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 박정희의 국가 주도 개발은 예외라기보다는 자본주의 황금기의 보편에 가까웠다. 박정희가 기적을 일으켰다기보다는 냉전기에 미국이 주는 각종 특혜(특히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되는 차관과 보호무역에 대한 미국의 묵인)를 이용해가면서, 그 당시로서 정상적이었던 방식(국가 개입)으로 그 당시로서 예사로웠던 경제성장의 효과를 봤다. (…) 수출 주도의 성장은 비록 빠르긴 하지만 그런 모델이 경제구조에서 일으키는 심각한 불균형(수출 대기업과 그 하도급 기업으로 이루어진 이중 경제구도, 구조적인 저임금 강요 등)은 나중에 거의 치유되지 않는 만큼 차후적으로 지급하는 ‘대가’는 크다. (…) 극심한 저임금 노동의 착취로 ‘기적’의 성장률이 달성됐지만, 경제가 커가는 동안 병영국가의 폭압 아래 놓인 사회는 진화되지 못했다. (…) 커져가는 경제는, 일제 말기 이상으로 치밀하고 철저한 전체주의 국가를 뒷받침했다. (…) 자본주의 황금기의 국가 주도 성장의 보편적 특징은 복지제도의 정비였다. 경제를 주도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국가가 성장으로 생기는 잉여를 활용하여 복지라는 재분배 메커니즘을 통해 다수의 피지배 인구를 경제적으로 포섭하는 셈이었다. (…) 박정희는 복지를 통한 포섭이 아니라 일제 말기나 만주국과 같은 방식의 무력동원과 폭압, 그리고 국가주의적 규율화를 선호했다. (…) ‘한강 기적’은 없었다. 박정희라는 희대의 기회주의자가 당대의 세계적 경제흐름을 잘 타서, 태평양전쟁 총동원기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종신집권을 꾀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다. 수출 의존과 군사주의적 국가, 재분배의 부족과 같은 박정희의 유산들은 우리 발목을 오랫동안 잡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 ‘기적’은 없었다(한겨레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ㆍ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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