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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죽자고 달려들 필요는 있지만

입력
2015.04.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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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금기를 건드리고 통념을 비트는 것은 그 중 하나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순발력 있게 치고 들어가야 웃음을 유발할 확률이 높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충분히 검열할 수 없고 ‘선’을 넘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남성 희극인 세 명이 모여 낄낄대며 사담을 나누고, 그것을 녹음해 팟캐스팅 했다. 그 중 한 명이 공중파 인기 프로그램의 고정 멤버로 선발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던 중, 일 년 전 팟캐스트 내용이 문제가 됐다. 이들의 팟캐스트 녹취록에는 선을 넘는 발언들로 빼곡했다. 코디에 대한 욕설, 군대 내 폭력 희화화, 가정사 폭로 등 여러 문제 발언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주목 받은 것은 ‘성 경험 여성 비하’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도구로 축소시키는 발언이었고, 희화화를 목적으로 한 과장된 연기는 폭력적이었으며, 이는 여성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할 여지가 충분했다.

이 일은 근래 온라인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세 명의 희극인은 강한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제가 존속되는 근본 원인 분석, 양성평등을 위한 지침들이 온라인에 퍼져가고 있다. 편견과 공격이 깃든 코미디 전반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공중파 방송에서 타인의 외모를 지적하며 상처 입히는 개그, 여성 일반을 소통능력이 부족하고 연인에게 값비싼 선물을 바라는 존재로 묘사하는 꽁트가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순기능이 있는 해프닝이었다. 평소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말을 싫어했다. 잘못된 사상을 웃음으로 포장해 전달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웃음은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기 쉽다. 따라서 농담이 어떤 대상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때, 그 대상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청자가 웃음기를 지우고 이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온당하다. 아니,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고 본다. 이번 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이용한 게으르고 저열한 코미디가 지양되기 바란다.

다만 이 사건이 해당 희극인들을 ‘끝장내버리고’ 싶어 하는 증오로 번지는 게 우려된다. 그들의 발언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나, 우리 사회에 용서를 위한 여백을 마련해둘 필요는 있지 않을까.

나는 많은 죄악이 ‘무지’와 ‘잘못된 학습’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무지함과 무신경함으로 여러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왔다. 앞으로 살아나가며 다른 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분야에 통달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타자의 실수와 죄악을 발견했을 때, 그를 아예 가능성 없는 인간으로 낙인 찍고 갱생할 기회마저 주지 않는 것은 가혹하다고 느낀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광연한 가부장적 통념을 돌아볼 때, 세 명의 희극인 역시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뒤 이를 토대로 발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잘못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결론은 웃자고 던진 말이 문제가 있을 때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타당하지만, 선을 넘는 농담을 던진 이를 ‘죽이자고’ 달려들지는 말자는 것. 대부분의 인간(연쇄 살인마, 아동 강간범, 타인을 자살로 몰고 국가 자원을 엄청난 규모로 갈취한 사이코패스는 제한다)은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구성원이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진심 어린 반성을 할 때 포용하는 곳이기를 희망한다.

사실 나도 남을 웃기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 이번 일이 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 웃기려다 혹시라도 삐끗해서 선을 넘는다면… 끔찍하다. 소규모 모임에서만 익살을 부리고 공적인 자리, 특히 SNS에서는 말을 아끼고 진지 모드를 유지하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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