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프랑스 여행 중에 엄청나게 넓은 밀밭 끝자락이 눈썹에 걸린 이후론, 지평선을 본 기억이 없다. 시골은 산, 도시는 건물로 둘러싸인 한국 지형에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꿩 대신 닭이라고 수평선이라도 보고 싶어 한강엘 나가 보지만, 거기에도 완전한 수평은 드물다. 건물들이 말뚝처럼 붙박여 있는 건너편의 도심만 으름장 놓듯 우뚝할 뿐이다. 대신, 허공을 올려다본다. 드넓으나 어떤 경계가 느껴지진 않는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은 시선의 끝에서 분할된, 말 그대로 수평의 일자가 금 긋듯 또렷하다. 외려 그게 더 절박한 무한에의 절경을 암시해 준다. 그에 비해 하늘은 너무 크고 둥글고 펑퍼짐해 감옥의 천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저곳 너머엔 네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라는 절망적인,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원근감을 느껴보고 싶다. 협소한 수직으로 일관된 현세의 삶에서 애초에 날아오르긴 힘드니, 숨이 터질 만큼 멀리 달려보고선, 그렇게 확인된 스스로의 한계를 통절하며 혼자 울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른다. 끝닿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막막함을 어루만지며 한 걸음 한 걸음 수평의 마지막을 나른하게 그어보는 일. 사람 관계든 글쓰기든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는 생각. 눈을 감으니 눈물 난다. 수평으로 가로지른, 아래위 눈꺼풀의 경계면에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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