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지 없는 수박’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부터 수박에 ‘T자’형 꼭지를 남기는 관행을 없애겠다며 14일 ‘수박 꼭지절단 유통 활성화 방안’을 야심차게 내놨습니다. 농식품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수박에 꼭지를 남기는 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수박에 T자형 꼭지를 남겨 유통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는데요. 미국 일본 등은 꼭지를 완전히 제거해 유통하고, 꼭지를 남기는 중국 베트남도 2, 3㎝로 짧게만 남긴다고 합니다. 수박 꼭지 부착 여부는 수박의 당도, 신선도 등과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추장스런 수박 꼭지를 보존하느라 수확과 유통에서 각종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데다 실수로 꼭지가 떨어진 수박은 품질에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가격이 최대 3분의 1까지 폭락한다는 건데요. 수박 꼭지만 과감히 잘라내도 연간 최대 600억원대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 농식품부 설명입니다. 이영식 농식품부 원예경영과장은 “수박 꼭지를 T자 모양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수확 과정에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T자 모양 꼭지를 없애는 방안에 대해 인력이 부족한 농촌이 크게 반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수박 꼭지를 통해 신선도를 판별해 온 소비자들은 급격한 변화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럼 도대체 수박의 신선도는 어떻게 판별을 해야 하느냐는 거죠. 주부 박모(54ㆍ서울 목동)씨는 “지금까지 수박을 고를 때 꼭지를 꼭 살펴봤는데 꼭지가 없으면 아무래도 불편하고 어색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수박 꼭지로 신선도를 확인하라는 것은 농식품부 유관기관도 적극 권장하는 방안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홈페이지의 ‘농축산물 구매 요령’을 보면 수박 선별법으로 ‘외형상 크기가 큰 것이 상품이고, 껍질이 얇고 탄력이 있으며 꼭지부위에 달린 줄기 부분이 싱싱한 것이 가장 좋다’고 소개돼 있습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홈페이지의 ‘농산물표준규격정보’도 수박의 등급 규격 기준과 관련, ‘꼭지가 시들지 않고 신선해야 한다’고 명시해놨습니다.
이에 대해 이영식 원예경영과장은 “수박 꼭지를 완전히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라 꼭지를 남기되, 1㎝ 이내로 하자는 것”이라며 “꼭지가 길건 짧건 꼭지를 통한 신선도 확인에는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수박 꼭지에 연연하는 관행을 없애려는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수박 꼭지를 남기지 말고 유통하자는 움직임이 농협 주도로 있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꼭지를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소비자와 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유통업계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과거(5~10일)에 비해 짧아진 유통기간(평균 3일 이내)과 품종개량으로 높아진 품질, 발달된 당도 선별 기법 등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여건이 예전보다 크게 유리해졌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입니다.
이번에는 꼭 농식품부가 소비자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해 농가의 불필요한 수고를 덜어주는 합리적 관행을 정착시켰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새로운 신선도 판별법을 만들어서 널리 홍보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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