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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아지는 학부모 모임… 혹시 나도 진상엄마?

입력
2015.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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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원 보내세요?" 신경전

운동회가 기회… 샤넬백 과시

정보만 얻고 학교 청소는 모른 척

시댁 부자라며 카페선 "현금 없어요"

일러스트 김경진기자 jinjin@hk.co.kr
일러스트 김경진기자 jinjin@hk.co.kr

“○○이는 유치원 때 공부를 많이 안 했다면서요. 영어랑 사고력 수학 안 시켰죠?”

첫 애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직장맘 A씨는 우연히 동네에서 만난 같은 반 아이 엄마 B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적기교육 철학을 갖고 있어 아직 아이에게 알파벳도, 연산도 가르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3월 반모임에서 한번 만났을 뿐인 B씨가 어떻게 알았을까? B씨는 같은 반의 또 다른 엄마 C씨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던 A씨의 머릿속에 문득 아이가 몇 주 전 C씨네 집에 놀러 갔던 게 생각났다.

“걔네 엄마가 한번 읽어 보라면서 영어만 써 있는 종이를 주던데. 블록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도 주면서 답을 써보라고 했어.” 집에 놀러 온 자기 아이 친구의 학습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C씨가 자체 진단평가를 실시했던 것이다. A씨는 격분했다. “엄마가 직장에 있으니 아이만 보내도 된다”는 C씨의 초대에 그토록 감격했건만, 아이는 친구 엄마의 진단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어쩐지 이후 다시 연락이 없더라니….’ C씨에게 따질까 한참을 고민하던 A씨는 괜히 분란만 일으킬 것 같아 마음을 접고, 수더분해 보이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C를 조심하라”고 귀띔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 뒷바라지 하랴, 학부모총회 참석하랴, 상담 받으랴, 두통에 몸살은 기본이다. 그 중 가장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 아이의 교우관계를 좌우한다는 엄마들의 반모임. 나댔다간 진상으로 찍히고, 조용히 앉아만 있으면 존재감 없이 잊혀지는, 중도의 기술이 절실한 자리다. 사교와 친목의 장이자 정보 교류의 최전선인 동시에 치열한 탐색전이 펼쳐지는 이 자리에서 ‘엄마사회’에 처음 발을 들인 초짜 엄마들은 현기증을 느낄지도 모른다.

초등생 자녀를 둔 엄마 10명에게 물었다. 엄마사회에서 ‘진상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른바 엄마사회의 정치학이다. 거주지역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ㆍ압구정동, 관악구 청림동, 구로구 구로동, 동작구 상도동, 서초구 서초동ㆍ방배동, 성북구 돈암동, 경기 파주시, 세종시이며, 전업주부와 직장맘의 비율은 5대 5로 맞췄다. 10명의 엄마가 쏟아낸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간추린 이 8계명만 지키면 큰 실수는 면할 수 있다.

1. “진단평가, 품평회 좀 하지 마세요”

성적과 등수가 나오지 않는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의 학습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내 아이가 너무 뒤떨어진 건 아닌지, 반대로 과도하게 공부를 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헷갈릴 때, 주변 아이들을 판단의 지표로 삼고 싶은 충동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자제해야 한다.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적뿐이 아니다. 아이들의 성격이나 행동, 행태 등에 대한 품평도 위험하다. “입학식에서 같은 유치원 출신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쟤는 행동이 거치네, 쟤는 시끄럽네 하며 품평하는 엄마를 만났어요. ‘어머, 쟤는 진짜 산만한데. 우리 애랑 같은 반 되면 어쩌지’ 시끄럽게 떠드는데, 진짜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더라고요.”

2. 쏙쏙 빼가기만 하는 그대는 정보약탈자

엄마 모임은 정보 교류가 핵심인 만큼 공정한 정보의 교환이 중요하다. 받는 정보가 있으면 주는 정보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 여기서 정보란 어느 학원이 애들을 잘 가르치는지 같은 사교육 정보뿐 아니라 학교의 교육철학과 교사의 성격, 학급의 분위기 등을 포괄한다.

하지만 공유가 가장 까다로운 게 사교육 정보인 것은 사실이다. 정보가 풍부한 ‘돼지엄마‘가 정보를 이용해 권력을 행사하며 모임의 주도권을 잡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를 어느 학원에 보내는지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도 모임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디 보내세요?”다.

“동네 엄마 한 명이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너 어느 학원에 다니니?’ 집요하게 물어봐서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그 엄마가 하도 안 가르쳐 주니까 애한테 그런 건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그 학원에 등록했더라고요. 그러면서 남들이 물어보면 ‘아무데도 안 보내요’ 둘러대는데, 좋게 보일 리가 없죠.” 그녀는 이후 엄마모임에 나타나지 않는다.

3. 돈 좀 똑같이 씁시다

엄마들이 모여 차 한 찬 마시는 데는 커피값 몇 천원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더 치사하고 불쾌해지기 쉽다는 게 문제일 뿐. 대부분 각자의 몫을 현금으로 내 한꺼번에 값을 치르는데, 그때마다 신용카드밖에 없다며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이 꼭 있고, 그런 엄마들은 1년 내내 그러는 경향이 있다.

“첫 모임에서부터 일년에 해외여행을 몇 번을 가네, 시댁에 재산이 얼마네 잘 사는 티를 팍팍 내더니, 차값은 한번도 안 내더라고요. 작은 액수지만, 내가 호구로 보이나 싶어 불쾌했어요.” 엄마 모임에서 소액의 현금 소지는 필수다. 가끔 반모임 대표나 학급 임원을 맡은 아이의 엄마에게 맡겨놨다는 듯이 계산서를 들이미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실례다.

돈뿐 아니라 노동력도 공평하게 제공해야 한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부모 참여 행사에 당연하다는 듯 전업주부, 그 중에서도 아이 하나만 키우는 엄마들의 등을 떠미는 경우가 많은데, 억울한 이들의 항변. “학교 청소하려고 회사 그만둔 거 아니거든요.”

4. 엄마모임인지, 미스코리아 대회인지

엄마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에서는 은근한 미모 경쟁과 부의 과시가 불가피하다. 아직은 젊고 아름다운, 그렇게까지는 육아로 피폐해지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강약조절에 실패하면 두고두고 ‘왕따’를 당할 수 있다. 초라해 보이지는 않되 과시의 욕구가 드러나서도 안 된다.

“오전 8시에 녹색어머니를 하는데, 한 엄마가 풀 메이크업에 킬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나타났어요. 애들 데려다 주러 온 엄마들 입이 딱 벌어졌죠. 학교에 아이들이 뽑은 엄마 미스코리아 진선미가 있는데, 그 중 한 명이었어요. 운동회 하는데 샤넬백에 지미추 구두 신고 온 엄마도 있고. 어떤 엄마가 뒤에서 수군거리며 ‘누군 없냐?’ 그러는데 전 없어서 이중으로 상처받았죠.”

5. 우리 남편의 스펙을 알려고 하지 말라

“남편은 뭐 하세요?”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사심 없이 정말 궁금해서 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초면에 이 질문을 입밖에 내버렸다면, 당신은 장차 엄마사회에서의 건강한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 “우리 남편이 의사잖아요” “우리 애 아빠가 서울대를 나와서”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두가 남의 사정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이런 민감한 정보는 오랜 교유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돼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6. ’우리 애는 공부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거짓말

세상의 어떤 엄마도 자기가 타이거 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학원을 10개씩 보내도 “난 사교육에 반대하지만, 아이가 공부를 재밌어 하니까 보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식자랑이다. “우리 애가 영어를 전혀 몰라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더니 어떤 엄마가 하루에 두 시간씩 영어 방송을 보여주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애는 그렇게 한다면서. ‘그렇게 오래 어떻게 본데요?’ 물으니 ‘우리 애는 재밌나 봐요. 다 들리니까’ 좌절했습니다.” ‘기-승-전-자식자랑’으로 끝나는 서사구조는 엄마사회에서는 필패다.

7. “그렇게 학원 많이 보내면 애 망가져요”

“어머, ○○엄마. 무슨 학원을 그렇게 많이 보내요. 애들은 바깥에 나가 뛰어 놀아야지, 그러다 애 이상해지면 어떡할라고. 어휴, 내가 아는 어떤 애도 원어민 교사만 있는 영어학원 보냈다가 틱 오고, 정신과 상담 받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나친 사교육의 폐해가 널리 알려지면서 유년기는 무조건 바깥에서 뛰어 놀아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엄마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종교가 된다. 더군다나 남의 집 교육방침은 절대 논쟁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고민을 토로할 때 성실히 응답해줄 수 있을 뿐이다.

8. 정략적 우정, 편 가르기 싫어요

10명의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은 ‘진상엄마’는 편 가르기 하는 엄마였다. 반모임에서 출발한 엄마모임이 소그룹으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누군 넣고, 누군 빼고 하는 전횡을 저지르는 엄마는 결국 그 자신이 축출된다.

“예쁘고 똘똘한 애들만 집으로 초대해서 놀게 하고, 자기 맘에 안 드는 엄마가 바쁠 때만 모임 약속을 잡는 식으로 편 가르기 하는 엄마가 있었어요. 결국 자기만 왕따가 됐죠.” “카톡방에 무슨 얘기를 올리든 호들갑을 떨며 찬사를 보내줘야 모임에 불러주는 엄마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정략과 모략이 난무하는 엄마사회에서 과연 우정은 가능한가. 모두가 조심하며 몸을 사리고, ‘Don’t ask, don’t tell’의 법칙이 행동강령으로 작동하는 이곳에서 날씨 얘기 말고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엄마들의 답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친구 만들려고 나가는 모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예외적으로 직접 경쟁할 일이 적은 이성 자녀를 둔 엄마들끼리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 딸을 보는 눈빛 자체가 달라요. 예뻐졌다고 칭찬을 해도 남아 엄마들은 진심이 보이지만, 여아 엄마는 견제가 먼저 느껴져요.”

하지만 경쟁의식이 덜한 다른 지역에서는 긍정적 답변이 많았다. “세상에는 좋은 엄마들이 훨씬 더 많아요. 엄마모임에서 고독한 육아의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어요. 훗날 아이들이 중2병에 걸려 광기의 골짜기를 헤맬 때 가장 좋은 위로가 돼줄 사람은 바로 이 친구들일 걸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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