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북극의 개념…'展
거대한 산맥 위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산들은 눈보라 때문에 모습을 조금씩 바꾸지만 무너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산맥은 산맥이 아니고 눈보라도 눈보라가 아니다. 산맥은 검게 칠한 신문지를 구겨 만든 것이고 뿌려지는 눈보라는 흰색 아크릴 물감이다.
노윤희ㆍ정현석으로 구성된 팀 로와정의 영상작품 ‘블랙 마운틴’이다. 작가들이 읽고 싶지 않은 기사를 낸 신문지는 이 사회의 거대한 질서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흩뿌려지는 물감은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저항을 의미하지만, 산맥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서울 한남동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열리는 ‘북극의 개념-정신분열증적 지리학’ 기획전은 로와정을 비롯해 한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7팀이 참여한, ‘장소’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을 주제로 한 전시다. 전시제목 ‘북극’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동떨어진, 상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기획을 맡은 강영희 큐레이터는 “자신이 관심을 둔 장소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장소에 얽매이지 않은 관점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전시의 모티브는 프랑스의 영화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단편영화 ‘부정한 손들’이다. ‘부정한 손들’은 음성으로는 스페인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1만년 전 손자국을 설명하면서, 영상은 1978년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비춘다. 이 영화는 1만년 전의 사건을 현재에 대입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분열증적 지리학’의 시점을 취한다.
뒤라스의 자세를 이어받은 작가들은 장소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해석해낸다. 로와정의 다른 작품 ‘멜팅’은 서울의 흔한 테라스를 촬영한 작품이지만 이누이트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재생한 음성설치작품 ‘원 세컨즈’와 결합되면 “북극에서 녹은 물이 서울에 흩뿌려지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최대진의 ‘교육적인 원자력 발전소’는 작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 건물 형상 안에 원자력 발전소의 굴뚝을 형상화한 찰흙덩어리를 집어넣어 자신이 받은 교육을 비판한다.
이 전시는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신인 미술기획자 선발을 위해 시행 중인 ‘아마도 전시기획상’의 두 번째 수상작이다. 윤범모 한국큐레이터협회장,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장 등 아마도예술공간의 운영위원 8명이 공모를 통해 기획안 중 하나를 선정해 시상하고 전시를 연다. (02)790-1178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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