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문제로 싸우다 내연남 살해
보톡스·필러 시술로 수사망 피해
CCTV 분석한 잠복 경찰에 덜미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살던 김모(42ㆍ여)씨는 2012년 한 술자리에서 유부남 윤모(당시 34세)씨를 소개받았다. 이들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 시작했지만 윤씨는 애초 약속과 달리 아내와 이혼하지 않은 채 김씨와의 관계를 2년간 이어갔다. 윤씨의 모호한 태도에 다툼은 잦아졌고, 김씨는 지난해 1월 9일 새벽에도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윤씨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두 사람의 언쟁은 몸싸움으로 번져 김씨는 집안에 있던 부엌칼로 윤씨의 가슴을 찔러 살해했다.
사건 발생 직후 김씨는 경찰에 윤씨가 자살했다고 허위신고를 한 뒤 참고인 자격으로 한 차례 조사만 받고 곧바로 잠적했다. 김씨의 도피생활을 도운 건 일란성 쌍둥이 여동생이었다. 김씨 자매는 은행예금을 모두 인출해 현금화했다. 의료보험 신용카드 교통카드 등 행적이 노출되거나 신원이 들통날 수 있는 수단은 일절 쓰지 않았다. 급한 용무 때 필요한 연락 수단 역시 대포폰만 사용했다.
이렇게 해도 안심이 안 됐는지 자매는 가뜩이나 비슷한 외모를 똑같이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 사이 보톡스, 필러 시술 등을 함께 받으며 육안으로 보기에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한 사람의 얼굴로 만들었다. 이들의 기상천외한 도피행각에 경찰은 추적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휴대폰 이용내역과 은행계좌 압수수색, 거주지로 추정되는 지역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소재를 파악하려 했으나 이렇다 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얼굴까지 바꿔가며 15개월 동안 용의주도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김씨는 지난 9일 경찰에 꼬리를 밟혔다. 충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동생 명의로 도시가스와 유선방송에 가입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일대 편의점 CCTV 분석 등을 거쳐 은신처를 확인하고 3일간 잠복 끝에 김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윤씨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14일 김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도피를 도운 쌍둥이 여동생은 친족ㆍ가족의 경우 피의자의 도주를 돕거나 숨겨주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친족 간 특례’ 조항에 따라 별도 처벌은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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