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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강남좌파 교수 "전두환 때는 통합 시늉이라도 했는데…"

입력
2015.04.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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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사회통합 의지가 없다, 의도했든 안 했든”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이준구(66) 서울대 명예교수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사회경제 현안을 묻는 인터뷰 틈틈이, 제자들의 근황을 묻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이 선물했다는 정년퇴임 기념 케이크는 사진에 담아 자랑했고요. 제자 덕을 본 얘기도 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은 학교식당에서 한참 어린 학생들이 인사를 하면 반갑게 응했습니다. 권위보다는 다정다감한 품성이 돋보이는 스승이었습니다.

13일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이 교수의 인터뷰 내용은 사회경제 현안에 집중되다 보니 다소 딱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인터뷰를 하면서 발견한 이 교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얘기를 할까 합니다. 지면 사정상 싣지 못한 내용도 더하겠습니다.

이 교수가 가장 고마워하는(기자가 느끼기에) 제자는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쟁쟁한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경제 관련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긴 합니다.

이 교수는 배우 문채원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요.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고 하네요. 그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했더니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모 방송국 PD가 문채원의 사인을 받아줬다고 합니다. 어찌나 행복하던지, 당장이라도 문채원의 사인을 홈페이지 등에 올려 자랑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의 구상은 미완에 그쳤습니다. “혹시라도 아내가 서운해 할까 봐”가 이유였습니다.

기자가 “요즘엔 매니저 등이 대리사인을 하기도 한다”고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정색했습니다. 그러더니 “진짜냐”고 되묻더군요. 이 교수가 가지고 있는 문채원의 사인이 진품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애처가다운 면모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이 교수에게 행복은 아내와 함께 장 보기라고 하네요. 1976년 결혼 후 무려 38년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일요일이면 같은 시간에 꼭 마트 카트를 밀었다고 합니다. 계산하면 거의 2,000번(1,976)에 이릅니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점심으로 수제비를 아내에게 대접했다. 요즘엔 좀 귀찮아서 장을 보고 외식을 한다. 이게 소소한 행복이다”고 덧붙였습니다.

결혼식 주례사에 대한 소신도 남달랐습니다. “길지 않게 3~5분 사이에 한다. 내용은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두 사람이 만난 과정과 에피소드, 상대방이 좋은 이유 등을 미리 듣고 준비한다.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찾으라고 한다.” 최근엔 주례사로 새로운 버전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이 교수는 휴대폰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사무실에 주로 있으니 유선전화나 이메일이면 충분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지론입니다. 서울대 재직 중엔 사회참여 발언도 거의 하지 않았고요. 그의 삶을 바꿔놓은 사람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4대강 생각하면 피눈물이 납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끔찍한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절망감이 더 커요. 환경은 경제학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문제인데, 아무도 말하지 않더라고요. 동료 학자들에게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써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죠.”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이후 이 교수는 자신을 강남좌파라 부르며, 홈페이지에 언론 등에 자신의 입장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원칙은 지키고 있답니다. “어떤 사태에 대해 잘 알고, 꼭 써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어야 써요. 내가 갑자기 이슈를 만들어서 써야 하는 건 정말 싫어요.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게 느껴지면 그때 씁니다.”

다음은 지면에 실리지 못한 이 교수와의 문답입니다.

-담뱃값 인상에 대해.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한 건 찬성이다. 문제는 증세 안 하겠다고 해놓고 뒷구멍으로 증세를 한 것이다. 정직하지 못했다. 그러니 선의조차 의심받는 것이다.”

-저서 시장과 정부에서 대마초 합법화 얘기도 했다.

“대마초는 정말 재미있다. 영국의 유명 약리학자 데이비드 너트라는 사람이 '마약-과장과 헛소리를 뺀 진상’(Drugs without the Hot Air)에서 여러 가지 향정신성약물들의 해로움 랭킹을 매겼다. 1위가 알코올, 4위가 담배였고, 대마초는 6위였다. 데이비드의 주장은 더 해로운 알코올과 담배를 그냥 두면서 대마초를 규제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 그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

“사회통합 노력이 부족한 게 제일 답답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부터 대탕평을 부르짖었는데 지금 사회를 봐라. 인사나 뭐든 다 거꾸로 가고 있다. 사회적 통합의 토대가 자꾸 흔들린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위기의식을 느낀다. 서로 신뢰하지 않고 내 몫만 챙기려는 분위기는 위험하다. 인사에서 통합의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5대 권력기관장이 다 영남 출신. 그래 놓고 무슨 통합이냐. 전두환 정권 때는 시늉이라도 했다. 지금은 시늉조차 없다. 메시지를 주는 거다. 사회통합 의지가 없다는. 의도했든 안 했든.”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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