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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눈여겨 볼 일본 한정 정사원제도

입력
2015.04.1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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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 대타협 결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을 발표한 뒤 간담회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 대타협 결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을 발표한 뒤 간담회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대기업 직원을 최근 만났다. 중소기업 직원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지만 학원비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인 것은 부인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파트타임 계약직 직원으로 취직을 해서다.

파트타임 직원은 남들과 똑같이 오전 8시에 출근하지만 4시간 근무를 마치고 오후 12시에 퇴근한다.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귀가하면 집안 일에도 무리가 없다. 물론 일하는 시간이 적은 만큼 받는 보수도 적지만 4대 보험도 적용되고 정직원이 누리는 갖가지 복지 혜택도 함께 받을 수 있다.

부인 입장에서는 적으나마 돈벌이를 하게 된 점도 좋지만 육아 때문에 끊긴 마케팅 분석전문가의 경력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갑다. 회사 입장에서도 숙달된 전문가를 많지 않은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득이다.

이 같은 시간제 근무 방식은 일본 기업들이 선호한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그룹은 하루 2~4시간만 근무하는 직원들을 채용해 손님들이 많이 찾는 아침, 저녁 시간대에 집중 투입한다. 덕분에 가사, 육아, 간병 등으로 장시간 근무가 어려운 주부들이 이곳에서 일을 많이 한다. 그래서 아이나 아픈 노인들을 돌봐야 하는 주부들이 특히 선호한다.

일본 기업들은 이를 ‘한정 정사원’제도로 부른다. 2007년부터 본격 도입된 한정 정사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단계다. 임금체계와 복지 혜택은 정규직과 똑같지만 근무시간, 근무지역 등이 제한적이고 승진 등에서 배제된다. 만약 배치된 영업점이 문을 닫으면 함께 해고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과 달리 정년까지 신분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고 고액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할 필요가 없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유통기업들이 주로 한정 정사원 제도를 선호한다. 일본 의류판매업체 유니클로의 경우 2013년 하루 4시간씩 5일간 일하는 한정 정사원제도를 도입하고 나서 비정규직 3만명 가운데 1만6,000명을 한정 정사원으로 전환했다.

일본 정부도 한정 정사원 제도를 기업들에 적극 독려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경기가 다시 살아나며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지만 거꾸로 실업 문제가 심각한 우리 입장에서도 이를 눈 여겨 볼 만 하다. 기업들이 고용을 꺼리는 상황에서 비용부담을 줄이며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시간을 쪼개 저임금 노동자를 늘리는 방편일 뿐이라며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쉽게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정 정사원 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고령화 사회로 치달으면서 줄어 들 수 밖에 없는 청년층 노동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인 일본의 경우 청년층 노동인구의 감소를 한정 정사원 제도를 통해 숙련된 중장년층으로 메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청년 실업 못지 않게 중장년층의 재취업 문제가 걸려 있는 우리 입장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더불어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임금이 정체되고 소비가 진작되지 않아 물가가 제자리걸음을 하며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안정적인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늘리는 대책이 시급하다.

이를 무턱대고 기업들에게 사람 많이 뽑으라고 강요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며 기업들에게도 부담을 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근 노사정위가 결렬된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노동시장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이 부족하다. 실업을 줄이고 경기를 살리기 위한 출발점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달렸다. 정부도, 기업도, 근로자도 노동시장을 바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장시간 일하는 정규직 확대만 일자리 대책이 아니며, 적은 임금의 비정규직만 무턱대고 늘리는 것 또한 임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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