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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극복 해법은 남을 높이는 것… 결국 내 자존감 높아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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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극복 해법은 남을 높이는 것… 결국 내 자존감 높아지기 때문

입력
2015.04.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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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으로 공감 회로 끊어질 때, 공격적인 성향 극대화

사적 세계·공적 일터 외에 타인과 함께하는 제3의 공간 필요

모멸감 과다한 유통 막을 수 있어"

9일 서울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서 열린 김찬호 교수(무대 오른쪽)의 '모멸감' 북콘서트에서 배우 조성진씨가 팬터마임을 선보인 뒤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9일 서울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서 열린 김찬호 교수(무대 오른쪽)의 '모멸감' 북콘서트에서 배우 조성진씨가 팬터마임을 선보인 뒤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달콤한 인생’(2005)에서 조직 보스인 김영철은 오른팔처럼 아끼던 ‘넘버2’ 이병헌이 왜 자신을 죽이려 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목숨을 앗아서라도 상쇄시켜야 하는 극한의 감정이 모멸감이라는 것이다. 학교 교감이 급식비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에게 공개 망신을 주고, 항공사의 임원이 승무원에게 모멸감을 안겼다가 비난을 받았다.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참지 못해 자살한 일도 있었다. 모멸과 자존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감정의 지형도 중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일보가 선정하는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_교양 부문 공동 수상작인 ‘모멸감’(문학과지성사)은 ‘정서적 원자폭탄’이 될 수 있는 모멸감의 실체와 속성, 역사적 배경 등을 인문사회학적으로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9일 오후 7시30분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서 열린 ‘모멸감’ 북콘서트는 과연 모멸감이라는 것이 어떤 감정이고 인간관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음악, 마임으로 드러낸 ‘퍼포먼스 토크’였다. 책의 저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20년간 인연을 맺어온 작곡가 유주환씨, 마임 연기자 조성진씨와 함께 했다. 한국마임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영성예술협회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조씨는 ‘모욕의 응어리’ ‘가위눌림’ ‘주차위반’ ‘작은 자의 이웃’ ‘정성’ ‘계란 한 알’ 등을 제목으로 한 짤막한 마임을 현악4중주단 콰르텟 트리니티의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의 마지막 순서인 이날 객석 정원을 훌쩍 넘긴 400여명의 관객들이 책 이야기와 공연에 푹 빠져들었다.

2시간 가량 진행된 북콘서트의 시작은 콰르텟 트리니티의 ‘사라방드: 시를 좋아하시나요?’였다. 김 교수의 원고를 읽고 유씨가 쓴 10곡의 현악 4중주는 음반으로 만들어져 책에 부록으로 담겨있다.

김 교수는 먼저 일상 속의 모멸감에 대해 이야기를 던졌다. “최근 (교감이 학생들에게 공개 모욕을 준) 급식비 사건부터 (프랑스 잡지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 만평으로 촉발된) 이슬람 테러까지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사건까지 우리 일상에는 모욕이 만연해 있다”고 진단한 그는 “모멸감은 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거부당했을 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차마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이라서 담론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시작하는 지점에 얼굴과 표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가면을 쓰고 마임을 연기한 조성진씨는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이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면을 잘 써야 한다”며 “소통을 위해서 연기를 잘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씨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하지만 표정과 마음이 같이 가지 않고 분리될 때 노동이 되고 경련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모욕은 공격을 낳는다. 김 교수는 ‘모욕을 당하면 내면의 공감 본능 스위치가 꺼진다’는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말을 인용해 모멸감으로 공감 능력의 회로가 끊어질 때 공격적인 성향이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모멸감에 대한 선행 연구는 많지 않다. ‘모멸감’은 김 교수가 2011년 연구에 착수해 지난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5개 장으로 나뉜 이 책에서 그는 모멸감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왜곡하고 폭력화하는지 살피고, 과거 전통 신분사회에서부터 현대 산업사회까지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짚어낸다. 또한 모멸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제언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모멸감이 만연한 시대에 어떻게 자존감을 끌어올릴 것인가. 이날 북콘서트에서 김 교수는 모멸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보다 극복과 치유에 무게를 뒀다. 자존감은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하느냐,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그리고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김 교수는 “내가 남을 높이는 것이 결국 자신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의사에게 환자 대하는 시간을 5분에서 15분으로 늘리도록 했더니 결국 의사들의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실험 결과가 단적인 사례다. 김 교수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울 때에도 ‘넌 괜찮은 아이’라고 치켜세우기보다 사회에 기여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위로와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와 ‘낯선 자들이 나누는 선물’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타인의 존재에 주목했다. “낯선 사람끼리 모욕감을 주고받는 일이 많죠. 낯선 사람이 내 삶에 침투하면 나의 행복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낯선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면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하고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호주에서 히잡 쓴 여성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자 한 백인 여성이 그 이슬람 여성과 함께 걸어주겠다고 나선 일이 알려진 후 트위터에서 15만명이 ‘필요한 경우 나도 함께 걸어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고받을 수 있는 은총 아닐까요.”

김 교수는 또 사적 세계와 공적인 일터 외에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민의 영역, 예술의 나눔 등이 개인의 자존을 높이고 모멸감의 과다한 유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런 제3의 공간이 없다 보니 거대한 공간과 개별적으로 맞서서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사적 세계와 일터, 제3의 공간이 어우러져야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모멸감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북콘서트에 참석한 40대 여성 이나경씨는 “강연에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형식을 예상하고 왔는데 마임과 음악 연주 자체가 책의 주제를 구현한 듯한 느낌이 들어 놀랐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정원씨는 “현악 연주와 마임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졌다”며 “최근 한국 사회와 관련해 느끼고 있던 점을 지적해줘 공감이 많이 갔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주연씨는 “책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강연과 공연이 하나의 주제로 펼쳐진 점은 무척 인상적이고 신선했다”고 했다.

3월 5일 ‘우주의 끝을 찾아서’(이강환 지음ㆍ현암사)로 시작한 6편의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에 대한 릴레이 북콘서트는 9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과 후보작 총 54종에 대한 특별전시가 26일까지 서울도서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도서전은 9월까지 전국의 주요 도서관과 서점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박준호 인턴기자(동국대 불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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