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마다 반복… 대책 시급
지난달 서울 성동구 H자율형사립고는 학생 추가모집 공고를 냈다. 입학했던 학생 10명이 전학가면서 결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추가모집은 추첨을 통해 학생을 충원한다. 올해 동대문구의 D일반고에 입학했던 A군은 H고의 추가모집에 지원해 3.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입 대상자로 선발됐다. 그리고 지난달 말 H고로 등교까지 했다.
사달이 난 것은 D고 교장이 뒤늦게 성적 상위권인 A군의 전학을 알게 되면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고교생이 전학을 가려면 학교장의 허가가 필요한데, D고 교장은 자신의 허가가 없었다며 A군의 전학을 취소했다. 이미 H고로 하루 등교했던 A군은 D고로 돌아왔고, 학부모가 다시 전학을 요청했지만 D고 교장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A군은 이달 초까지 전학 등록을 마치지 못해 D고에 남게 됐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 표면적으로는 ‘학생이 원하는 전학을 교장이 막아버린 사례’지만, 교육계에서는 우수한 학생을 놓고 벌이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갈등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도 부족한 우수학생을 자사고가 빼간다는 일반고의 불만과 결원을 채워야 학교 운영이 가능한 자사고의 충원 방식이 갈등의 씨앗인 셈이다. 현 고교 체제의 변화가 없는 한 매년 학기초 학생 쟁탈전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2일 일선 고교에 따르면 최근 H고로 전입한 학생 중 4명은 광진구 K일반고 출신인데, 이들의 내신 성적은 상위 0.2~0.3%인 것으로 전해졌다. K고 교장은 “일반고에서는 우수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 학습분위기를 높이려는데 이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다른 학생들의 동요도 심해진다”며 “고민 끝에 전학을 허가 했지만 학교에는 상처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일반고 교장들은 자사고가 추첨을 통해 추가 모집을 하지만 실제로는 “성적이 좋은 일반고 학생들을 사전접촉해 데려간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추가 선발된 학생들 대부분이 우수학생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모집 당시 지원학생들의 정보를 갖고 있어, 선발되지 않은 우수 학생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수 학생 모집에 공을 들이는 자사고가 성적이 낮은 학생이나 높은 등록금(일반고의 3배)을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은 일반고로 전학가도록 유도한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 Y일반고의 전 교장은 “자사고에서 전학 온 학생을 상담한 결과 성적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로, 학교측이 ‘일반고로 가라’고 해서 왔다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기 초 일반고 학생들이 대거 빠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3월 중엔 결원 충원을 하지 않기로 자사고들끼리 협의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법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어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자사고도 불만이 있다. 지난해부터 입학 성적 제한이 풀리면서 추첨에 따라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입학하게 됐는데, 부적응을 이유로 집 근처 일반고로 전학가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재정 결손이 생겨 충원할 수 밖에 없는데 일반고로부터 욕을 먹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선 자사고 입학 후 일정기간 전출ㆍ전입을 막는 등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자사고의 전ㆍ편입학은 수시로 가능하도록 돼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우수학생 충원을 목적으로 자사고가 지원자와 사전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면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법 시행령에 자사고 전ㆍ편입학 기준과 절차를 규정하도록 해달라고 교육부에 검토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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