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일(현지시간) 파나마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얼굴을 맞댔다. 1시간여 동안 비공식 양자대화를 한 두 정상의 만남은 라울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59년 만이자 1961년 국교 단절 이후 54년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했듯이 두 정상의 만남은 과거 낡은 이념을 청산하고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될 만 하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해 12월 양국이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이후 진행되고 있는 후속조치의 일환이다. 올 1월 미국의 대 쿠바 무역ㆍ금융 제한이 완화되고 여행이 확대됐으며 지난달에는 양국 간 직통전화가 개설됐다.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된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쿠바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대사관 재개설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카스트로의 정상회의 참석도 미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정상화 합의 이후 미국이 쿠바에 초청장을 보내면서 성사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쿠바 봉쇄정책을 펴온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비난하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봉쇄정책에 아무런 책임이 없기 때문에 사과한다”며 그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냉전이 끝난 지 오래”라며 “역사에 갇혀 있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미국과 쿠바 두 정상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모습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피로 물들었던 굴곡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게릴라로 위장한 쿠바 난민들을 침투시켜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하려 했던 중앙정보국(CIA)의 피그만 침공사건은 냉전시대 이념의 광기가 어디까지 치닫고 있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정확히 54년 전인 1961년 4월 17일 CIA의 공작에 속아 피그만에 상륙했던 1,200여명의 쿠바 난민은 카스트로 군대에 모두 포로가 되거나 사살됐다. 이 사건은 쿠바와 소련의 밀착을 불러 이듬해 12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쿠바 미사일위기로 이어졌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정상화는 이달 초 타결된 이란 핵협상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다. 이란과는 협상 타결 후속조치 여하에 따라 36년 만에 국교정상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대통령 취임 전 쿠바 이란 북한을 거론하며 “적과의 악수”를 하겠다고 한 오바마의 약속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이제 북한만 남았다.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는 패배주의적 인식은 접을 때가 됐다. 미국이 카스트로 정권에 손을 내밀었듯이 의지만 있다면 북미협상을 재개할 틀과 토대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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