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술독에 빠져 가족을 내팽개 치고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미화원으로 새 삶을 열어 나가고 있는 주정만(57ㆍ가명)씨 사례는 알코올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종인 동시에 총체적 부실 상태인 국내 알코올중독자 치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이다.
주씨는 고교 때부터 술을 마셨다. 시골 출신의 그는 고교를 서울에서 다녔는데, 밤마다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다. 음주 벽은 결혼 이후에도 이어졌고, 끝내 가정 파탄을 불렀다. “아빠, 술주정 하지 않았다고? 자, 보라고. 어젯밤 아빠가 엄마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딸이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에서 주씨는 고성을 지르며 방안의 물건들을 던졌고, 말리는 딸을 발로 걷어찼다.
2008년 여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혔다. 아빠의 도 넘은 술 주정에 가족들마저 등 돌린 것이었다. 병동 입원 1주일 뒤 가족과 통화가 이뤄졌다. “다신 술 안 마실게. 살려줘.” 통사정 끝에 15일 만에 퇴원했다. 금주 선언은 오래 가지 않았다. 퇴원 1주일 뒤 취직한 주물공장에 출근하면서 소주를 샀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술을 마셨고, 일 하다가도 술 생각이 나면 남몰래 편의점을 찾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2012년 5월 회사에서 해고됐다.
직장에서 쫓겨난 뒤 공원에서 사흘 동안 소주를 퍼마신 뒤 귀가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집으로 돌아왔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이었다. 퇴원 1주일 뒤 다시 술을 입에 댔다. 집 근처 골목에서 팩소주를 빨고 있는 아빠를 본 딸은 울어버렸다. 그래도 술을 못 끊었다. 다시 지방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5개월 뒤 퇴원했다. 정말 술을 끊고 싶었다. 술 마시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병원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마땅한 데가 없었다.
2013년 7월 아내가 수소문 끝에 찾아낸 낮병동에 이끌려 갔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었다. 지금 술을 입에 대지 않은지 21개월이 지났다. 병원 수녀님 도움으로 병원 미화부에서 일 하고 있다. 환자들 오물을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대소변을 못 가리는 이들에 비한다면 한결 낫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술보다 소중한 것이 인생이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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