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초여름, 시골길을 걷다보면 집근처 밭이나 언덕에서 특이한 색깔의 변종 깻잎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제니퍼 로렌스가 열연한 ‘엑스맨’의 돌연변이 미스틱처럼 깻잎은 깻잎인데, 잎이든 줄기든 완전히 보라색이다. 잎을 따서 살짝 씹어보면 향긋하고 매운 방향이 박하처럼 화하게 퍼진다. 이놈의 정체는 변종 들깨가 아니라 ‘차조기’라는 식물이다. 차조기는 꿀풀과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지에서 야생으로 자란다. 차조기의 보라색 어린잎을 따서 말린 차가 ‘자소엽차’다.
한의학에서는 어떤 식물을 약용으로 쓸 때, 전초(全草)를 쓰기보다는 생명력이 충만한 부위만 선별해서 쓴다. 생명력이 충만한 부위는 다년생초본의 뿌리, 일년생초본의 씨앗, 나무의 뿌리껍질, 나무껍질, 열매 등인데, 주로 그 부위를 제거하면 죽거나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부위들이다. 그래서 식물에서 상용하는 약재부위는 뿌리 씨 열매 껍질 과육 잎 꽃의 순서다. 여기서 잎은 가벼운 존재라 입었다가 벗어버리는 옷과 같다. 식물은 광합성을 위해 봄여름 동안 잎을 펼쳤다가 가을이 되면 미련 없이 털어버리는데, 여름 화기(火氣)의 허세로 펼치므로 태생부터 이미 양기(陽氣)가 없는 빈 공각(空殼)이다. 약력이나 약용부위로 볼 때 잎의 비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차조기의 보라색 잎을 약으로 쓸 때는 보법(補法ㆍ몸의 기혈을 보하는 치료법)에는 응용하지 않고 가벼운 질환의 치료제, 약보다는 차, 경우에 따라서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까닭이다.
차조기의 약명은 자소엽(紫蘇葉)이다. 자소엽은 특유의 향이 있으면서 따뜻하고 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성질로 한기를 몰아내므로 몸이 냉해지거나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을 때 응용하는 약이다. 또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되지 않거나 배탈이 났을 때도 좋다. 특히 어패류의 독을 풀어준다(解魚蟹毒)고 했는데, 해산물을 먹고 생긴 급성장염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베트남 현지의 토속음식에는 여러 가지 생야채를 잘게 썰어 라이스페이퍼로 말아 쌈처럼 먹는 요리가 있는데, 간혹 차조기가 들어있어 묘한 방향이 입안에 퍼진다. 베트남 사람들이 향이 강한 차조기를 식용으로 먹는 이유는 베트남의 더운 날씨에 상하기 쉬운 해산물에 의해 탈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도 해산물이 풍성하고 횟집도 많다. 그렇지만 속이 냉하고 배탈이 잦거나, 한번이라도 급성장염 혹은 두드러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해산물은 언감생심이다. 차는 문화이자 일상의 건강을 증진하는 도구다. 해산물이나 회를 먹고 두드러기나 배탈이 나는 분들을 위해서는 ‘자소엽차’를 권한다.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우리의 한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맞춤차를 생활화하고 식문화도 개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소엽차의 생활화는 횟집을 비롯한 해물요리 식당이 최적이다. 그늘에서 말린 차조기 잎이나 자소엽차를 준비해 뒀다가 식전이나 식후, 손님상에 한차례 올리기만 하면 된다. 시원한 생수와 와인 잔이 필요한데, 투명한 와인 잔에 차조기 잎을 띄워 가볍게 흔들기만 하면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답고 환상적인 보라색 물 ‘미스틱(mystique)’이 연출된다. 식후 애피타이저나 음료수 대신 와인 잔에 담긴 우아한 보라색 자소엽차 한 잔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식탁과 식당의 품위까지 올릴 수 있다. 아울러 어패류의 유해균을 없애면서 소화흡수도 도와 배탈이나 급성장염의 위험까지 예방할 수 있다.
허담 옴니허브 대표ㆍ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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