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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이 야만이 된 시대… 4ㆍ16문학, 윤리학적 통각에 숨죽이다

입력
2015.04.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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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쓸 수 없다" "문학이 뭐냐", 참사 직후 시ㆍ소설은 비탄과 무기력

"그래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들 '용감하게' 세월호 주제 선택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르포 문학ㆍ논픽션의 발흥 예견도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한국 문단의 움직임을 이처럼 잘 설명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닷속에 수장된 이래 한국 문단은 일순 마비됐다. 시집과 소설책의 출간이 미뤄졌고 작가들은 추모시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칼럼, 낭독운동으로 저 거대한 장례식에 동참했다. 즉각적인 울부짖음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새로운 문학이 싹트고 있다. 기억과 상실, 공감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깔린 하나의 정서는 “윤리학적 통각”이다.

“프리모 레비 식으로 말하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있는데, 누군가는 구조된 자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고 다른 누구는 구조된 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낸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윤리학적 통각의 소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구조된 자들은 결국 도망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계에서 구조되었다(즉 도망쳤다고) 생각하면서 아파한다.”(신형철 문학평론가, 문학동네 2015년 봄호)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문단의 소산 중 이 윤리학적 통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품은 없다. 그 파장이 앞으로의 문학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것을 ‘4?16 문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4?16 문학: 이 마당에 문학이 뭐냐

참사 세 달 후 발간된 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사)는 세월호에 대한 문학의 가장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고은을 비롯한 시인 69명의 시에는 유가족의 오열 영상과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서 드러났던 비탄과 무기력함, 미안함, 수치심이 고스란히 표출돼 있다.

“국민소득이 어쨌다고? 집값이 어쨌다고? /똥개야 조느니 차라리 나라도 물어라 /이 따위를 시랍시고 적는 내 손목을 물어라”(김사인 ‘적폐가 아니라 지폐’)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김선우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밥도 안 넘어가는 마당에 문학이 다 뭐냐’는 자조는 소설에서도 감지된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 아래 평범한 사람이 간첩으로 조작되는 과정을 익살스럽게 그린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에서는 안기부 직원이 주인공에 대한 고문의 강도를 최대치로 높이려는 순간 돌연 이야기가 중단된다. “그래서…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 다음 일어난 일이 궁금한가? 그 다음 스토리를 어서 빨리 듣고 싶은가?” 이야기를 막고 끼어든 작가는 이내 서사의 허망함을 늘어놓는다. “고통을 감상하는 이야기란, 사파리 버스에서 내다보는 저녁놀 붉게 물든 초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은가!”

저녁놀 물든 초원이 진도 앞바다를 의미한다면 사파리 버스는 모니터 앞에 앉아 사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우리를 의미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이 부분은 세월호 참사 때 쓰였다.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는 작가의 고백은 소설 한가운데 패인 흔적처럼 남았다.

‘차남들의 세계사’가 용산참사가 발발한 2009년 쓰이기 시작해 세월호 사건이 터진 2014년 마무리됐다는 사실은 유의미하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한국 사회의 총체적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사건이고, 이런 모순이 심화하는 데 최근의 정권이 한몫을 했다면, 세월호 이전에 쓰이기 시작한 소설들에서 참사를 예견한 듯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인숙 ‘모든 빛깔들의 밤’(문학동네)에는 열차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에는 ‘5?18 광주’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폭력에 의해 수십 년간 고통 받는 개인들이 등장한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용산의 불타는 망루 영상을 보고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오늘날, 심화된 양극화와 ‘이명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사실’의 압도적인 힘이 한국 문학으로 하여금 새삼 ‘현실’이나 ‘정치’와 대면?대결하게끔 하고 있다” (세계의 문학 2015 봄호)고 썼다. 그렇게 보면 세월호 이후 불거진 것처럼 보이는 정치와 문학의 대립은 2008년부터 예견된 것이다. 천 교수는 극도로 각박해지는 현실을 압도적인 ‘사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리얼’한 문학, 즉 현실참여적 문학의 필연성을 자연스럽게 언급한다.

4?16 문학: 그래도 응답하고자 하는

현실을 흡수하는 데 일정 시간이 걸리는 소설의 특성상 ‘세월호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2014년 겨울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 김애란 ‘입동’(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최은영 ‘미카엘라’(실천문학 2014년 겨울호), 김탁환 ‘목격자들’(민음사)은 직간접적으로 ‘그 날의 일’을 암시한다.

‘다만…’은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한 연인의 이야기다. 한때 연인이었던 ‘나’와 ‘희진’은 일본의 한 카페에 들어가 노래를 신청한다. 세월이 흘러 둘은 헤어졌고 그 일은 까맣게 잊혀졌지만 그날 카페에서 노래를 듣고 자살을 포기한 한 사내만은 끈질기게 그 기억을 붙들고 바뀐 삶을 산다. 소설 속에서 세월호는 그저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작가는 희진의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란 물음을 독자들에게 건넨다.

‘입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일상이라는 주제를 통해 유가족이 견뎌야 하는 삶,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 영우를 잃은 부부는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세간의 시선 때문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시식을 하는 일상 활동에까지 제약을 받는다. 시식의 가벼움과 참척의 무거움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태평한 생각은, 유족이 받은 거액의 보상금에 이르면서 혐오로 바뀐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남편의 죽음으로 세상이 끝장났다고 믿는 엄마의 딸인 소라와 나나, 그리고 이웃 나기의 이야기다. 엄마의 절대적 허무에 감염된 소라는 결혼하지 않고 대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나나는 결혼을 약속한 남성의 집에서 어두운 미래를 감지하며, 나기는 마음에 둔 동성 친구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한다. 그러나 나나가 임신을 하고 세 사람이 대안 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이들은 덧없고 하찮지만 어떻게든 버텨야 할 삶을 재확인한다. 작가가 소설 출간 전에 쓴 산문에서는 이 소설의 동력을 엿볼 수 있다.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다 같이 망하고 있으므로 질문해도 소용 없다고 내가 생각해버린 그 세상에 대고, 유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뭘 할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눈먼 자들의 국가’ 중 ‘가까스로 인간’)

이 소설들은 세월호 사건을 배경, 동력, 모티프로 사용하면서 초기의 비탄과 자학에서 벗어나 기억과 애도, 희망을 고민한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소설들이 논픽션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허구의 매력이 반감될 걸 알면서도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세월호라는 주제를 “용감하게”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문학동네 2015년 봄호). 그 이유는 앞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라는 말과 ‘사실의 압도적인 힘’이란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박대현 문학평론가는 아예 “세월호 참사 앞에서 문학의 미적 가치를 중시하거나 그것에 얽매이는 것은 시인(문학가) 스스로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임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작가와 사회 2014년 겨울호)는 과격한 발언으로 세월호 이후의 문학이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천명했다.

4?16 문학: 문학이 행동이 될지니

소설가 현길언씨는 “변동기 사회에서 소설의 정치성은 문학의 본질로 자리잡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4?16 문학은 70~80년대의 저항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리얼리즘 문학의 성격을 띠게 될까.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의 특수성을 들었다. 그는 10일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열린 심포지엄 ‘세월호 시대의 문학’에서 ‘세월호와 리얼리즘’을 발표하며 세월호 참사가 철저히 은폐된 사건이기 때문에 정보에 한계가 있고, 따라서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만 하는 역할을 부여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소년이 온다’에서 드러나는 빙의다. 한강 작가는 정부군에게 총을 맞아 죽은 시신에 이입해 썩어가는 주변 시체들의 냄새와 자신의 얼굴에 뿌려진 흰 페인트를 묘사한다. 함씨는 이처럼 이전에 없던 “시점을 발명하는 것”이 종전의 리얼리즘과 ‘세월호 시대의 리얼리즘’의 차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르포 문학과 논픽션의 발흥을 예견한다. 천정환 교수는 “‘문학가’의 일이 ‘문학’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관습이 “시와 소설 중심으로 최대한 좁게 구획된 ‘문학’장의 관습”이라며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작가들과 시민단체가 르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대현 평론가도 “미적인 성질을 벗어나지 못한 문학은 재난의 현실 앞에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상실”한다며 비문학적인 것들_르포 칼럼 문학운동_의 활성화를 주문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학과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국가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문학이 재난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문학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문학이 되는 새로운 차원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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