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유엔 안보리에서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결의안 1325호’가 채택됐다. 안보리에서 여성권리를 다룬 최초의 결의안이다. 분쟁지역에서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평화유지 활동의 전 과정에 성(性) 인지적 관점으로 여성의 전면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분쟁의 희생자가 아닌 분쟁의 해결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후속조치로 유엔이 권고한 국가행동계획에 우리 정부를 포함, 4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 그럼에도 평화구축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미미하다. 유엔 여성개발기금에 따르면 지난 20여 개 평화협상에서 여성 참여는 8%에도 미치지 못했다. 냉전 이후 체결된 300여 개 평화조약 중 성범죄를 언급한 조항은 18개에 불과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전쟁위험을 상시 짊어지고 있는 분단국임에도 안보ㆍ통일 분야에서 여성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2013 성 격차지수’에서 한국은 142개국 중 117위였다.
▦ 세계 여성평화운동가들이 전후 70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비무장지대(DMZ) 도보횡단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결성한 ‘위민 크로스 디엠지(Women Cross DMZ)’에는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영국의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 등 12개국 30여명이 참여했다. 스타이넘은 “한국전쟁이 터진 고교 시절 친구들이 징집됐는데, 2차대전 참전용사였던 친구의 아버지가 전쟁의 끔찍함을 겪게 하기 싫어 아들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경험을 소개했다.
▦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행사에 북한은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정부는 “제3자가 DMZ에 출입하려면 유엔사령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소극적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DMZ를 가로지른 것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3년 뉴질랜드인 5명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북한에서 넘어왔고, 작년에는 고려인들이 자동차로 DMZ를 건넜다. 행사가 예정된 5월24일은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이자 5ㆍ24 조치 5년을 맞는 날이라 의미도 적지 않다. DMZ를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정부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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