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가 전쟁에 희생된 의용병들
신격화로 실상 숨기고 출전 독려
'호국영령' 칭하고 국립묘지 세워
성역화 작업 파시즘까지 치달아
지난달 집권 자민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자민당 창당 60주년 기념 대회에서 ‘2015년 운동방침’을 채택하고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일본의 행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야스쿠니 참배가 한일간 논란이 될 때마다 사분오열됐던 우리 사회는 ‘민족으로’ 대동단결된다. 그러나 이 같은 삼국의 갈등은 야스쿠니가 기리는 추모대상 명부에 A급 전범이 포함된 탓일뿐, 전사자를 ‘호국영령’으로 기리며 제사를 통해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서울 전쟁기념관이나 중국의 항일전쟁기념관도 마찬가지다.
‘전사자 숭배’의 저자인 독일계 유대인 역사학자 조지 L 모스는 호국영령 같은 호칭이나 국립묘지 조성 등이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전사자를 숭배하고 전쟁 경험을 신화화하는 것은 프랑스 혁명전쟁(1792~1799)과 같은 근대국가의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의용병들에서 비롯됐다. 과거 왕실이 주축이 된 전쟁은 귀족 용병 징집병으로 이뤄졌지만, 근대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는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선 시민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는 대량살상이 이뤄지는 전쟁의 실상을 숨기고 나아가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사(戰死)를 신성화하고, 전쟁 자체를 낭만화할 필요가 있었다.
각국은 앞다퉈 전사자만을 위한 전쟁 묘지를 건설했고, 다른 한편으로 전쟁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일로 바꾸는 시도를 한다. 당시 제작된 전쟁 그림엽서에는 진짜 시체나 고통스러워하는 부상자의 모습 대신 장미 화단에 놓인 기관포나 참호 안에서 맥주 파티를 벌이는 병사들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기만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런 작업의 절정을 이룬 시기가 바로 1,300만명이 숨진 제1차 세계대전이다. 1차 대전으로 죽은 이들의 생일만 기려도 하루에 3만여명을 기려야 한다. 살아남은 국민들이 1년 내내 전쟁의 악몽을 되새기고도 남을 엄청난 희생인 셈이다. 각 국가는 전사자 가족을 위로하고 또 다른 젊은이들이 전장에 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영웅적 죽음’을 선전하고 이 영웅화를 시각화한 전쟁 묘지를 활발하게 조성했다. 독일의 ‘영웅의 숲’, 프랑스의 ‘장례 정원’ 등은 숲이나 정원의 형태로 묘지를 꾸며 ‘자연을 이용하여 죽음의 독소를 제거하는 방식’(105쪽)으로 전사자를 성역화시키기에 이른다. 이런 전사자 숭배와 신화화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파시즘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저자는 영상매체가 발달해 사실적인 전쟁보도가 가능해진 2차 대전은 양상이 달랐다고 해석한다. 영웅적 죽음을 맞이했다던 전사자는 그냥 ‘사망’이라고 표기되기 시작했다.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전쟁과 전사자를 통해 근대 국민국가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주장과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문학, 영화, 연극, 노래 가사와 엽서, 포스터, 광고 등 자료 인용이 저자의 주장 사이에 구분되지 않은 채 쓰여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디부터가 사실에 기반한 본인의 주장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난독증을 의심할 만큼 번역 역시 난해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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