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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1970년대

입력
2015.04.1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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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났고, 부모님은 장년으로 들어섰으며, 유신 헌법이 선포되었다. 흑백 티브이에선 고교야구와 김일의 프로레슬링이 인기 있었다. 긴 머리 청년들이 거리에서 경찰들에게 머리를 잘렸고,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은 치마 길이를 추궁 당했으며, 베트남에서 오른 손목과 무릎 아래가 잘려 돌아온 동네 아저씨가 있었다. 기타 잘 치고 그림 잘 그리고 주먹싸움으로 동네를 평정한 막내 삼촌의 피부색은 흑인이라 오해 받을 정도로 다크 초콜릿 빛깔이었다. 막내 고모가 여고생 교복을 벗은 얼마 후, 대통령이 자신의 오른팔에게 사살됐으며 이른 삭풍이 몰아치는 시월 하순, ‘국민학교’ 운동장에선 영면하신 ‘각하’를 추모하는 긴 행사가 열렸다. 눈물 흘리는 아이도 있었고, 딴청 피우다 담임선생에게 뒤통수를 살짝 가격 당한 아이도 있었지만, 내겐 몹시 추웠다는 기억이 우선이다. 대통령 서거 직전 학교 앞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는 걸 보고는 “아저씨 거기 진짜 총알 들었어요?”라 물었고, 대답 없이 옅은 미소만 짓는 군인 아저씨를 보며 국가 안보의 투철함에 안도했었다. (그때가 ‘부마항쟁’ 기간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마징가 제트와 아톰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이 조금씩 깨어질 무렵, 새로운 괴이한 태양이 떠올랐으며 이후, 이상하게 긴 또 다른 겨울이 7, 8년간 지속되었다. 유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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